[MT 시평] 준법과 신뢰의 문화심리학

정태연 기자
2015.03.24 07:43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사회든 법을 위반하는 사례, 특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적인 이득을 취하는 부정부패가 없을 수는 없는 듯하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여서 부정을 저지른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군다. 또한 그러한 사건 뒤에는 어김없이 소위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선언이 비장하게 들려온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이 둘의 동행은 마치 잘 짜놓은 각본처럼 이루어져왔다. 지금도 딱 그러한 형국이다.

범법행위를 진화론적으로 접근하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나 그러한 위반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행위는 꽤나 당연해 보인다. 본래 법이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은 가능한 한 규범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위반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사회는 이러한 범법행위를 제재하는 것이 필수다. 말하자면 무임승차자를 없애려는 장치들을 마련할 필요가 생긴다.

이러한 보편적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특정 사회의 문화적 요소가 위법행위의 빈도와 정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어떤 특성이 법을 경시하는 데 일조하는가? 먼저 우리는 위법행위에 대한 둔감도가 꽤 높은 편이다. 어느 정도 약한 수준의 위법행위는 다른 목적을 위해 눈감아주는 사회적 풍조가 강하다. 그래서 법이 사회적 행동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최고의 판단체계가 아니라 때로는 그저 성가신 제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위공직자들이 위장전입하는 것쯤은 위법이 아니라 관례가 된 지 오래다.

초기의 몇몇 위법행동이 갖는 부정적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법을 지키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금세 팽배해지면서 가능하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위법의 전염성은 그 사회에 대한 신뢰수준을 저하하는 가장 위험한 주범이다. 즉, 사회가 법대로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각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에 다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고, 원칙에 근거해서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믿는 것뿐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법을 경시하는 데는 법의 제정이나 개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법이 법으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록 그 법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더라도 우선은 그 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가 사회적으로 공유되어 있을 때 그 사회는 법을 함부로 고치지 않게 되고,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법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신중히 제정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사람들은 경외심을 갖고 법을 대하게 된다. 만든 지 하루 만에 개정의 목소리가 드높은 ‘김영란 법’이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대부분 위법행위는 물질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것, 즉 인간의 감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개인적으로는 원초적인 동기에 불과할 뿐이고 사회적으로는 자기 개인만을 고려하는 이기적 동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더 수준 높은 동기가 작용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적 욕구가 발달하기 어렵다. 한 사회의 부패지수가 왜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두가 법을 지키는 사회는 구성원의 위법 행위를 막거나 적발해서 처벌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어느 사회든 위법이 만연할수록 그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우리 사회는 분명 법을 잘 지키는 사회는 아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