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들의 근황을 매일 확인할 수 있는 요즘에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통찰이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에 주목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사회적 끈들이 만드는 패턴을 연구할 방법은 없을까? 지위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런 유의 고리타분한 질문들이 당장 어떤 이익으로 연결되는 일은 드물기에 오직 소수 학자의 관심만 끌 뿐이었다. 그러던 중 1953년 학술지에 한 논문이 실렸다.
수많은 사람을 연결하는 사회관계망에서 그들의 중요도나 영향력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친구가 많을수록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수를 세면 되지만 단지 친구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영향력이 크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그 ‘친구의 친구’가 많지 않다면 영향력은 해당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즉 많은 수의 사회적 외톨이와 친구를 맺기보다 소수 영향력 있는 인물과 관계를 맺는 경우, 내가 직접 아는 친구들은 많지 않아도 그 친구들이 다른 많은 친구를 아는 경우에는 나의 중요도나 영향력도 함께 상승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체 관계망에서 내 친구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이 많을수록 나의 지위나 영향력이 한층 더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제안한 학자의 이름을 따서 ‘카츠중심성’(Katz centrality)으로 명명된 이 아이디어는 그로부터 40여년 동안 소수 학자 사이에서만 떠돌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두 학생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인터넷 검색 기능을 향상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해당 키워드를 많이 포함한 문서일수록 중요도를 높게 매기는 기존 방식과 달리 웹페이지의 중요도를 전체 네트워크 맥락에서 평가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페이지랭크’(PageRank)로 명명된 이 방식은 인터넷 검색에 혁명을 일으켰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구글’(Google)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을 포함한 많은 이가 우리도 구글과 같은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경영학이나 공학계열의 실용학문을 키우고 철학 역사학 사회학이나 수학 물리학과 같은 비실용 학문들은 통폐합하려는 대학도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전공불문하고 모든 학생이 회계원리를 이수해야만 졸업이 가능한 대학도 있고 인문학을 ‘사치재’로 규정하는 경제학과 교수도 등장했다. 그러나 구글의 시작점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려던 사회학자, 인류학자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우리가 사용하는 첨단기술들이 대부분 전혀 다른 목적과 맥락 속에서 뿌려진 씨앗의 열매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드물다.
수학은 토지측량과 같은 실용적 목적을 벗어나 ‘수 자체가 만드는 질서’에 대한 추상적 사고를 통해 오늘날의 수준으로 발전했다. 밤하늘의 별을 단지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찾는 수단으로만 바라보았다면 현재 우리가 아는 우주에 대한 지식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의 필요만 생각하면 시야가 좁아져 드넓은 가능성의 벌판을 놓치게 된다. 해서 진정한 실용은 사실 당장의 실용만을 생각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진공 속에서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목적과 이유를 가진 누군가가 생각하고 남겨놓은 것을 재료와 밑천으로 삼아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