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엘리엇은 당신의 지갑을 채워주지 않는다

오동희 기자
2015.06.12 06:34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앞두고 대표적인 미국계 벌처(Vulture)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발목이 잡혔다.

쟁점은 두가지다. 합병 비율의 합리성과 ‘모든 주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엘리엇의 순수성 여부다. 엘리엇의 순수성 여부를 따지는 이유는 이번 분쟁이 ‘명분’ 싸움을 가장한 이권다툼이기 때문이다.

우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보자. 엘리엇은 순자산 가치도 반영되지 않아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선 순자산가치를 합병의 근거로 삼는다는 논리다. 국내에서도 비상장사일 경우 순자산 가치를 합병의 근거로 삼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상장사는 합리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시장가격을 그 기업의 가치로 삼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가격이 해당 기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상태를 감안해 결정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 기업의 실적, 현재 보유한 자산가치, 경영진의 능력, 경쟁사의 경쟁력, 글로벌 경영환경, 미래가치 등의 모든 유무형 가치의 결정체가 ‘시장가격’이다.

시장참여자들 중 일부는 그동안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신봉하던 ‘시장가격’을 부인하는 엘리엇의 편에 서서 시장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기업은 생물이다. 가치가 변하고 그에 따라 주가도 끊임없이 변동한다.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되는 종목은 사들이고, 고평가됐다고 생각되는 주식은 팔아서 이익을 챙기는 게 증시다.

삼성물산이 저평가돼 있었다면,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이 이 주식을 사들여서 주가는 올라갔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주식 시장의 격언처럼 향후 주가가 더 떨어질지 오를지는 ‘신(神)’도 모른다. 기업의 가치는 시장에서 주가로 결정하는 것, 이것이 ‘시장의 룰’이다. 엘리엇은 시장 참여자들이 정한 ‘시장가격’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게임의 룰’을 바꾸려하고 있다.

엘리엇이 시장의 룰을 바꾸려고 하는 이유가 두 번째 쟁점이다. 말하는 것처럼 도덕적인 가치와 주주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느냐의 문제다.

미국의 탐사 전문 기자인 그레그 팰러스트는 엘리엇을 ‘벌처(vulture) 펀드라고 부른다. 벌처는 ‘썩은 고기만 먹는 대머리 독수리’를 일컫는 말로, 다른 사람의 곤란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사람을 뜻한다.

고위험성 자산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 헤지펀드와는 개념이 다르다. 그동안 엘리엇의 행태를 보면 남의 곤란을 이용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팰러스트에 따르면 콩고의 기아 난민 해결을 위한 원조금을 자신들의 채무를 갚는 데 먼저 쓰지 않으면 지급을 중단시키겠다고 압력을 가해 투자금의 3.5배를 번다든지, 석면증 환자 50만명의 보상금을 깎아 이익을 챙기는 행태를 보였다. 이로 볼 때 엘리엇의 수식어로는 벌처펀드가 더 어울린다.

3대에 걸쳐 80년 가까이 기업을 이끌어온 주주와 이달에 주식을 사서 ‘모든 주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떠드는 투자자 중 누가 더 미래를 위해 투자할까. 답은 심플하다.

플라톤은 인간의 본질은 ‘이성과 욕망과 기개’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의 그동안 행보는 ‘눈 앞의 고기’라는 욕망에 충실했던 벌처다. 개인 투자자들은 충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엘리엇의 주장에 기댈 수 있다. 하지만 엘리엇이 아닌 스스로를 믿는 이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동물의 왕국’ 어디에서도 대머리 독수리가 자신의 고기를 주변에 양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엘리엇은 결코 당신의 주머니를 채워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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