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중국진출 기업이 고전하는 이유

정영록 기자
2015.11.25 03:21

지난 8월 동료교수 몇 명과 함께 우리 업체들이 중국에 투자한 30개 업체를 방문했다. 이들 업체는 2004년에 이어 11년 만에 방문한 것인데 당혹감이 느껴졌고 만감이 교차했다. 10여년 전의 활기찬 분위기와 확연히 달랐다. 어쩌면 뒷걸음치는 듯한 분위기, 만나기를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느껴졌다. 더 놀라운 것은 10개 업체가 현지에 매각되거나 철수한 것이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리잡은 업체를 제외하곤 조만간 체감경기가 국내로 이전될 것으로 예상됐다. 아니나다를까 최근 잘 나가던 일부 대기업의 영업이 뒤뚱거려 내부적으로 고군분투한다고 들린다. 어쩌면 엄청난 부실정리로도 이어질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기술력이 있는 우리의 중견기업들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현재 세계 경제정세는 중국업체들의 약진으로 그야말로 무한경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어쩌면 경제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특히 중국에선 비즈니스의 의사결정은 기업주가 실시간으로 직접해야 한다. 우리 대기업들은 주재원들이 나가서 의사결정을 하는데 몇 박자 뒤진다. 결과적으로는 현지 경영의 상황변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대기업을 따라나간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의 의사결정이 늦어지니 자연히 어정쩡하게 있다가 사업을 접거나 매각하고 말게 된다. 기업주가 현장에서 상황변화를 꿰뚫어보고 실시간으로 이에 적응하는 핵심 경쟁력을 지닌 중견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겠다 싶었다.

둘째, 중국 기업들과는 이제 규모의 경쟁을 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생각이다. 한 업종을 특화한 초거대 기업들이 막대한 내수를 기반으로 중국에서 일어나서 세계 기업으로 등장하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 중 106개가 이미 중국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국유기업체다. 조타수를 잡은 최고경영진은 정부가 임명한 인사이기는 하지만 한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최고경영진에 오른 이들이다. 시쳇말로 빠삭하게 국내외 업계의 환경을 파악하고 있다. 그만큼 이들은 의사결정이 빠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나라의 재벌기업들은 훨씬 더 전문적인 산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압력을 받고 있다.

셋째, 정부와 국회가 제때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많다. 우리 공무원들은 세종시 출퇴근으로 극도로 지쳐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정부(국회 포함)의 기업 지원이 얼마나 유효하게 작동하는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당장 한·중 FTA만 해도 그렇다. 이미 체결되었지만 국회의 승인이 늦어지고 있어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지금 중국의 기업 경쟁력은 소위 ‘중국 속도’로 칭할 만큼 1년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필요하다면 핵심 인력을 국적불문 과감히 고용하거나 아예 기업을 통째로 사서 기술력을 확보한다. 일각이 여삼추라고 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한류가 유행하게 된 것이 정부가 방임한 결과라거나 통신업계도 역설적으로 정부가 상대적으로 무지해서 발전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정부의 권위를 찾으려면 호령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넥센이란 우리 게임업체가 일본으로 본사를 옮긴 것도 뼈아프게 되씹어 보아야 한다. 정부가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제는 나라를 군인만이 지키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 기업인들이 지키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부·국회·국영업체·대기업들이 우리나라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기술력을 지닌 우리 중견업체들 만이라도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심정으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 특히 기술기업이 그래야 한다. 자칫 새로운 위기를 맞아서 기술기업마저 해외에 헐값에 매각된다면 우리나라는 없어지게 된다. 국민이 합심해서 업계에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중견기업인을 키워줘야 할 이유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