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맹모(孟母)를 잘못 알았다고 전해라

오동희 기자
2016.01.01 03:20
[편집자주] <b>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b>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사람들은 항상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잘 알려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일화)의 새로운 해석으로 한 해를 시작해볼까 한다.

 우리가 일화를 통해 알고 있는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교육을 위해 소위 ‘강남 8학군’으로 이사 가는 어머니로 묘사돼 있지만 기원전 372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맹자의 어머니 뜻을 누가 알겠는가.

 세기적 사상가인 맹자를 기른 그 어머니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더 큰 뜻을 품었다면 후대의 맹모삼천지교 해석은 달라진다.

 지금까지 스토리는 ‘열녀전’에 소개된 대로 어린 아들의 교육을 위해 공동묘지와 시장터, 서당 근처로 세 번 이사한 후 서당 근처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주변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재해석하는 쪽은 생각이 다르다.

 맹자의 어머니를 ‘강남 8학군’으로 이사 가는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설명하는 해석은 역사적 사상가의 어머니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은 아닐까. 일화는 필요에 따라 후세에 각색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맹모를 더 깊은 뜻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이사한 순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열심히 공부만 하고 세상 잇속에 밝은 사람도 결국 마지막 가는 길은 같다는 것을 미리 가르친 것은 아닐까.

 왕후장상의 부귀영화도 그 마지막 길이 1평 남짓한 땅속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에게 알리기 위한 속깊은 생각으로 첫 이사지를 묘지 인근으로 정하지는 않았을까.

 인간의 삶과 죽음의 큰 뜻을 현장에서 가르친 후 세상의 이익이 어디에 있고 이를 셈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두 번째 시장터를 교육현장으로 삼았다면….

 첫 번째 교육현장에서 맹자의 어머니는 삶의 끝이 어디인지를 가르친 후 비로소 무엇을 위해 재물을 쌓아야 하고, 어떤 명분을 위해 학식을 쌓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것일 수 있다.

 맹자가 추구한 인(仁)과 덕(德)을 통한 진정한 인간다운 삶의 추구는 단순히 환경을 찾아다닌 것으로 오해받은(?) 맹모의 속깊은 철학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맹자는 이런 세 번의 이사를 통해 어진 왕도정치 이념을 정립하는 첫 씨앗을 뿌린 것은 아닐까. 이런 해석을 지나치다고 해도 딱히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인간은 한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덕적으로 완성되고 그 부를 자신과 사회에 이롭게 쓰며 아름답게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끝내는 날을 갈구한다. 맹모삼천지교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좋은 교육환경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아닐까.

 지나간 을미년 우리 사회는 갈등(葛藤: 칡과 등나무)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새해에는 각계각층이 갈등을 풀고 서로 보듬으며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한 삶을 사는 건 어떨까 한다.

그렇게 산 후 ‘100세 인생’의 유행가 가사처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 2300여년 전 맹자의 어머니가 ‘병신년’(丙申年) 새해 후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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