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신격호 총괄회장의 명예를 지키는 길

송기용 부장
2016.03.11 03:30

촉영부성(燭影斧聲). '촛불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도끼 내리치는 소리만 들렸다.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중국 송(宋)나라 태조 조광윤의 사망과 관련 있는 글로,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후계 구도를 둘러싼 권력다툼을 의미한다.

롯데가 경영권 분쟁이 화제가 된 것은 은밀하게 이뤄져 온 재벌가 내부의 후계다툼이 담장 밖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언론 친화(?)적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활약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덕분에 베일에 가려져 온 광윤사(光潤社), L투자회사 등 롯데그룹 지배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 굳게 닫혀있던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 문이 열려 생생한 육성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국민들은 계속되는 경영권 다툼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신 총괄회장의 마음이 장남인 신 전 부회장에 있는지, 차남 신동빈 회장에 있는지, 신격호 일가 10남매의 친소관계가 어떤지까지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해 7월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휠체어에 태워 일본으로 향하면서 시작된 분쟁이 사실상 끝났다. 지난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이 완승을 거뒀다. 신 전 부회장에게 주어진 마지막 반전 기회로 여겨졌던 주총이었다.

경영권 향방의 키를 쥔 종업원지주회가 신 회장 손을 들어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자신이 경영권을 장악하면 종업원지주회 회원 1인당 2억5000만엔(약 26억원)을 보상하겠다는 신 전 부회장의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불확실한 회유책 보다는 한·일 양국 롯데그룹 시너지 강화라는 신동빈 회장의 '원롯데·원리더(One Lotte, One leader)' 비전이 통한 것이다. 1999년 한국 롯데를 맡은 지 불과 10여 년 만에 재계 10위권 그룹을 전통의 유통, 제과 외에 화학, 금융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재계 5위(매출 85조원)로 키운 신 회장 능력에 대한 신뢰도 영향을 미쳤다.

6개월여 만에 쿠데타를 진압한 신 회장은 원리더 입지를 확고히 했다. 무엇보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하게 됐다. 한국 롯데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 기업공개 과정을 통해 일본 롯데 지분을 50% 이하로 떨어뜨려 한·일 종속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게 됐다.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이었던 일본 롯데의 한국 롯데에 대한 과도한 지배를 해소하는 전화위복 계기가 됐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땅에 떨어진 창업자 신격호 총괄회장의 명예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다. 이번 분쟁의 최대 피해자는 체면을 구긴 신 전 부회장이 아니라 신 총괄회장으로 보인다. 그는 1941년, 19세 나이에 당시 면서기 두 달치 봉급인 83엔을 손에 쥐고 고향을 떠났다. 전후 잿더미가 된 일본에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부를 일궜고 고국으로 금의환향했다.

롯데그룹의 출발점인 신 총괄회장은 다음 달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정밀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 정신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는지 판단해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자신의 정신상태가 올바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현 상황을 신 총괄회장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신 총괄회장은 평생의 염원인 롯데월드타워(123층)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고 명예로운 삶을 완성하는 길은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바로 장남 신동주씨다. 신씨는 임시주총 패배에도 불구하고 성년후견인 지정과 6월 정기주총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종업원지주회를 향한 구애를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멈춰서는 것이 아버지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다. 막장드라마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국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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