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포커와 구조조정

김진형 기자
2016.06.08 14:52

"왜 그때 그 기업을 죽이지 않았냐"는 비판의 문제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포커게임은 3장의 카드를 나눠주고 4장의 카드를 더 받아 총 7장 중 5장으로 가장 높은 패를 만든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게임 참여자 모두가 4장의 추가 카드를 받을 순 없다. 카드를 더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베팅이다. 카드를 한장, 한장 받을 때마다 마지막에 내가 이길 수 있을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가능성이 없다면 과감히 게임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베팅한 돈은 모두 날린다.

포커게임으로 구조조정을 설명하는 이가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구조조정의 전문가다. 카드를 더 받을지, 게임을 접을지 결정하는 그 '판단'이 구조조정 기업을 살릴지, 죽일지 결정하는 '판단'과 유사하다는 얘기다.

구조조정 과정을 비판하는 목소리 중 가장 흔한 것이 "왜 그때 죽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STX조선해양에 대한 자율협약을 결정했던 2013년 당시 세계 경제불황이 이렇게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선플랜트사업을 침몰시킨 국제 유가가 3년 만에 이렇게 곤두박질칠 것이란 예상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저유가 시대는 끝났다'며 온 나라가 기름값 잡기에 혈안이 돼 있던 시절이다.

'전망'이란 수많은 가정을 반영해 현재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추정을 끌어내는 작업이다. 한국은행이 내놓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마저 1년도 안돼 여러 번 수정된다. STX조선과 대우조선해양 지원 당시 채권단은 회계법인을 선정해 정밀실사를 벌여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회계법인들의 신뢰성마저 의심받고 있지만) 당시로선 경제적인 판단이었다.

결과가 다 드러난 지금, 왜 그때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느냐는 비판만큼 쉬운 것은 없다. 승자가 결정된 후 패자에게 '그때 게임을 포기하지, 왜 카드 한 장 더 받았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채권단의 판단 과정에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정치권의 참견 혹은 개입이 있었고 구조조정 기업에 낙하산들이 판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퍼붓는 비판은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는 시도' 자체를 원천봉쇄해 버릴 위험이 크다. 그게 '변양호신드롬'이고 '복지부동'이다. 돈 아낀다고 게임을 포기하면 나보다 더 낮은 패를 갖고 있더라도 상대방이 이긴다. STX조선, 대우조선을 죽였다면 중국과 일본의 조선사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반면 STX조선이 채권단의 지원으로 살아온 지난 3년간 중국에선 수많은 조선사가 문을 닫았다.

법원은 "STX조선에 지원한 4조4000억원이 쓸모없게 소모됐다"고 비아냥댔지만 지난 3년간 STX조선으로 먹고 살았던 수많은 직원들과 하청업체, 지역경제에 미친 경제적 효과는 애써 무시한 단순한 발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수많은 구조조정 실무자들은 '카드 한장을 더 받는 것이 합리적일지, 아니면 베팅한 돈을 포기하고 게임을 접을지'를 놓고 밤 새워 고민하고 있다. 결과로만 비판하는 이들은 그들에게 가장 쉬운 방법(무조건 죽어!)을 강요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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