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한미약품이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의 핵심 방안으로 연초 제시한 투자회사 모습을 공개했다. 초기 단계 유망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신생 제약·바이오벤쳐 등 투자를 맡을 '한미벤쳐스'가 주인공.
자본금은 100억원으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과 임 회장 일가가 소유한 한미IT가 각각 50억원씩 출자했다.
한미벤쳐스 설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고비는 사명이었다. 연초 한미약품은 오픈이노베이션 행사에서 투자회사 'HM벤쳐스' 설립 계획을 공개하고 벤처 투자를 예고했다. 그러나 회사 이름에 HM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한 투자회사가 한미약품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HM벤쳐스' 사명 등록에 실패했다.
두 번째한 난관은 공정거래법.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가 투자회사를 설립하려다 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제에 걸렸다. 그 결과 임 회장과 임 회장 가족이 소유한 관계사가 나서게 됐다.
1위 제약사 한미약품에서 발생한 해프닝은 한국 산업계에서 제약사들의 위상과 헤쳐나갈 과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미약품은 1월 한국판 JP모간 헬스케어 컨퍼런스를 표방하며 오픈이노베이션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 때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최대 행사답게 국내 내로라하는 바이오벤처 관계자들이 총출동 했다.
이 자리에서 HM벤쳐스 계획이 공개됐다. 한미약품은 사명을 정하는 데 상표등록 현황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고 공정거래법에 대해서도 몰랐다. 단순히 실수라고 하기엔 행사가 너무 컸고 한미약품의 몸집과 이름값이 크고 무겁다. 민망한 일이다.
경험과 치밀함이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한편으론 어떻게든 투자사 설립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 회장이 나선 데 대해 박수를 쳐줄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 회장과 함께 양대 출자자인 한미IT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한미IT는 회사 이름에서 드러나듯 시스템 통합 및 의료용품 판매 등을 영위한다. 지난해 301억원 매출과 영업이익 7억원을 기록했다. 대단하진 않지만 위태하지도 않다. 이 회사는 임 회장의 세 자녀가 자사주 9.0%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 매출 가운데 82.2%가 한미약품그룹 계열사로부터 발생한다.
투자회사 설립에서는 세련되지 못했지만 한미IT 지배구조와 매출 구조는 다수의 대기업들과 판박이다.
한미벤쳐스 설립과 한미IT 지배구조는 우리 기업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 처리는 몰라도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와 부의 쏠림은 기업 크기와 무관하다는 점에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한다. 해당 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기업이 매출의 200억원 이상 또는 매출의 12% 이상을 계열사에서 거두면 규제 대상이다.
한미약품그룹은 자산이 5조원 미만이어서 이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법을 어기지 않아 공정위 눈치를 볼 일도 없다. 그래도 8조 기술수출의 주인공이어서인지 국민들의 체감하는 한미약품은 '대기업'이다. 당연히 기대치도 높다. 임 회장과 한미약품이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