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도둑맞은 레시피와 소작료 전쟁

김희정 기자
2016.07.06 09:09

[우리가보는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이미지=특허정보넷 키프리스 제공

15세기 무렵 베니스 항구에 한 청년이 외딴 하숙집을 얻어 문을 안으로 걸어잠그곤 매일 요리를 했다. 하숙집 주인은 처음 맡아보는 기막힌 음식냄새에 이끌려서 열쇠구멍으로 방안을 훔쳐봤다.

좀 더 많은 향료를 구하러 홀연히 동양행 선박을 타고 사라졌던 청년은 3년 후 베니스항을 다시 밟고 깜짝 놀란다. 그만의 레시피가 이미 베니스 시내 전체에 퍼져 곳곳에서 같은 향을 내고 있었던 것. 범인은 하숙집 주인이다. 마카로니 그라탱의 유래다.

베니스는 근대적 의미의 특허권이 처음 정립된 지역을 알려진다. 15세기 후반 무렵 이미 베니스에선 특허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부여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 창의적인 장치를 고안하면 베니스공화국에 보고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확산된 특허 제도는 500년 이상 다듬어졌다. 하지만 자본주의 역사가 40년이 채 안되는 중국은 불과 10여년 만에 글로벌 IT 특허시장의 신예로 부상했다.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걸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글로벌 특허기지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재평가 하기도 했다.

물론 화웨이의 특허 공세엔 마케팅 효과를 염두에 둔 여러가지 셈법이 깔려있다. 기술적인 우위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퀄컴을 제친 지난해 특허출원수(3898건)나 애플을 넘어서는 R&D 투자규모(연간 92억달러) 등 밖으로 드러난 숫자는 시사하는 바는 크다. 미래에 우리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에게 이용료를 내고 기술을 얻어쓰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글로벌 IT기업들에게 특허는 공정거래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가장 배타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무기로 통한다. 특허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IT 스타트업들에 무조건 많은 특허를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일단 기술 방어적인 측면에서 초기 스타트업에겐 특허 출원이 필수적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애플과 삼성전자 사이의 세기의 특허 전쟁이 무승부 형국이 된 데는 삼성전자의 수적으로도 '충분한' 통신기술 특허가 작용했다. 애플에겐 없는 삼성만의 통신기술 특허로 애플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 특허에 맞선 것.

그렇다고 무조건 특허 출원만 많이 하는게 답일까. 특허출원 숫자를 늘리는게 경쟁사의 공격에 맞서는 방어전이라면 '길목을 지키는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 특허 전략이다. 글로벌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의 사업모델은 이 같이 핵심 길목을 지키는 특허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퀄컴 등은 특허와 R&D 조직 간 협업을 통해 지적재산권 만으로 상당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해놓고 있다. 농사만 짓지 않고 목 좋은 땅을 선점해 소작료도 챙기는 셈이다. 특허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같은 IT인프라 강국에선 IT서비스에 승부를 걸기보다 원천기술 특허를 확보하는게 최적의 사업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해 어려울 따름이지 지식재산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우리도 특허 라이센스사업을 시도해야 한다"며 "길목을 지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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