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밥 안먹는' 대한민국

세종=정혁수 기자
2016.07.12 03:20

"야 이 눔아, 한국사람은 밥 먹어야 힘쓰는 거여"

"누가 그래요? 시간도 없고 밥 맛도 없어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얼른 한 숟가락 들고 나가. 밥 먹어야 힘도나고, 머리도 좋아지는 거여. 어여"

학생을 둔 가정이라면 매일 아침 이런 풍경은 다반사일 듯 싶다. 쌀 소비가 줄어든 게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요즘 그 추세는 속도를 더 하는 것 같다. 집집마다 쌀 씻는 소리는 사라진지 오래고, 대신 빵이나 과일 또는 즉석식품이 메뉴를 대신해 버렸다.

모두가 식생활 습관이 바뀌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실제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혼밥족'이 증가하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 등 간편식의 성장세는 두드러 진다. 반대로 쌀소비는 몇 년째 곤두박질 치고 있다. 쌀소비가 30년전과 비교할 때 '반토막' 난 지 오래고, 하루에 밥 2공기도 먹지않는 대한민국 가정이 허다하다.

이같은 추세는 넘쳐나는 쌀을 저장하는 정부 양곡창고 안을 들여다보면 더 두드러진다. 지난 5월말 기준으로 쌀 재고량은 174만4000톤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 133만7000톤보다 더 늘어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 수준이 80만톤이니 이미 정상수치를 벗어난 지는 한참이 지났다. 그동안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아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들여오기로 한 저율관세할당(TRQ) 물량도 계속 증가세다.

이에 반해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 해 국민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g이다. 밥 한 공기에 쌀이 100~120g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 1인당 하루 소비량이 공기밥 두 그릇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다. 1985년 무렵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28.1kg 이었지만, 지난 해에는 62.9kg을 기록하면서 쌀 소비량은 30여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문제는 아무리 둘러봐도 넘쳐나는 쌀 재고량을 소비할 만한 출구가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몇 년째 이어진 풍년으로 물량은 시장에 넘쳐나고 있지만 쌀 재고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농부가 흘린 '땀의 결실'이 되어야 할 쌀가격은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들어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80kg기준 14만3892원으로 작년 같은기간 15만8472원보다 1만4580원 떨어졌다.

정말 이런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쌀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농업의 뿌리는 내부로부터 위협받게될 지도 모른다.

정부도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작년 말 '쌀 특별재고관리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장반응은 그리 탐탁치 않은 것 같다. 농식품부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은 보이지만 생산조정제 등 정부대책이 수년 째 반복되는 '재탕''삼탕' 정책들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일부 농가에서는 정부대책중 하나였던 '묵은 쌀 배합사료 원료용 판매'와 관련, "쌀을 이용해 만든 배합사료를 사용했더니 오히려 산란률이 떨어졌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 농민은 "오리, 닭의 경우 주로 옥수수 등을 섞어 사료로 제공해 왔는 데 갑자기 쌀을 섞다보니 사료성분 변화에 민감한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답답해 했다.

요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탈퇴 결정)로 인한 국제 금융시장 불안도 심각한 문제지만, 쌀 소비량이 줄면서 우리 농업은 이제 생존위기까지 걱정하는 급박한 처지가 됐다. 위기상황은 농업·농촌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도 마찬가지다. 경영난으로 자립기반을 상실한 농업인들이 속출하게 된다면 농식품부의 존재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정말 식량문제가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 이슈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밥먹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려는 결사항전의 각오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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