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검은가방을 든 상사맨과 IB맨

김명룡 기자
2017.03.02 16: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고 아프리카에서 난로를 판다던 '상사맨'이 우리 경제를 책임지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까지 넥타이를 매고 검은색 007가방을 든 상사맨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팔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거치며 상사맨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우'가 몰락했고 한국경제도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상사맨'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들은 것은 얼마 전 열린 '대한민국 IB(투자은행) 대상' 시상식에서였다. 종합대상인 '최우수 IB딜'을 수상한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부사장은 수상소감을 통해 "우리 선배들이 검은색 가방을 들고 물건을 팔기 위해 해외로 다녔는데 이제는 한국투자증권이 자본을 팔러 다니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공산품이 아닌 자본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미국 등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외국자본이 우리나라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간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전까지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데만 몰두했던, 그래서 자본시장에 문외한이었던 우리는 외국 자본이 외환위기를 틈타 이익을 챙겨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김 부사장은 "한국투자증권은 해외 사업역량 강화를 통해 지난해 전체 IB 수익의 25%를 해외에서 벌어들였고 올해는 35%, 내년에는 50%까지 해외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KDB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통합으로 국내 최대 증권사로 출범한 미래에셋대우는 해외투자에 유난히 공을 들이는 회사다. 주식시장만 놓고 보면 전 세계의 2%에도 못 미치는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전략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그래서인지 AI(대체투자), PEF(사모펀드) 분야의 해외진출 속도도 가장 빠른 편이다.

2006년 총 2600억원에 매입한 중국 상하이 푸동 미래에셋타워는 현재 1조4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에셋은 세계 1위 골프공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쿠쉬네트에 대한 투자로 이미 수백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한국의 토종 사모펀드를 주도해 글로벌 1위 브랜드를 인수해 성공적으로 투자를 마친 첫 사례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은 "부동산분야에서만 3개 본부 인력들이 전세계를 훑고 다니고 있다"며 "투자를 하기 위한 미래에셋의 비행기가 항상 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비유했다. 실제 박현주 회장도 2002년부터는 1년의 절반 정도는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투자기회를 찾고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지난 50년간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제조업 수출로 우리의 배고픔을 해결해 왔다면 이제는 영국처럼 금융으로 먹고사는 나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수출'이라고만 하지 말고 '투자'라고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정부는 초대형 IB육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 과거 상사맨의 역할을 IB맨들이 해내는 만큼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 포함돼야 한다. 제조업으로만 돈을 벌어온 우리도 이젠 투자로 돈을 벌어들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올해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꼭 20년째 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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