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가 행정소송 대신 정부 요구대로 다음달 15일부터 약정할인율을 25%로 올리기로 했지만 통신비 갈등은 여전하다. 통신비를 바라보는 관점이 워낙 극과 극인 까닭이다. 추가로 몇 푼 더 깎아준다면 되풀이되는 통신비 논쟁을 끝낼 수 있을까. 지금의 시장구조를 확 바꾸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단말기완전자급제(이하 자급제)가 주목받고 있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 SK텔레콤이 자발적으로 자급제 도입을 검토하고 국회에서도 제도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 보인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성태 의원이 최근 자급제 관련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하자 여당 내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자급제란 현재 이통사 대리점에서 병행하는 단말기 판매와 이동통신 서비스 개통을 분리하자는 제도다. 즉 소비자들이 온라인 마켓이나 오프라인 판매점에서 휴대폰을 산 후 온라인(전화) 혹은 대리점을 통해 이동통신 서비스에 별도 가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서비스 요금경쟁(이통사간)과 단말기 가격경쟁(제조사간)을 촉발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가계통신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자급제 찬성론자들의 기대다. 이들은 자급제가 도입되면 이통사들이 연간 수조 원의 단말기 지원금을 요금인하의 재원으로 쓸 수 있어 신규 가입자에게 쏠린 요금 경쟁이 기존 고객들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급제는 혜성처럼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2015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의 대안으로 제시했고 법안까지 발의됐지만 당시 여당(자유한국당)과 시장참여자들의 외면 속에 19대 국회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됐다.
그렇게 잊혀지는가 싶던 자급제가 2년 만에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통신시장 환경이 크게 변해서다.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통사들의 최대 경쟁력은 단말기 수급력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스마트폰을 경쟁사보다 얼마나 빨리, 또 얼마나 많은 물량을 받아내느냐가 이통사들의 절대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통신기술의 발달과 LTE(롱텀에볼루션) 유심(USIM) 이동 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단말기 수급력은 더이상 차별화한 경쟁력이 되지 못했다. 가령, 이전에는 통신사별로 사용하는 주파수와 앱·서비스 등이 제각각이라 같은 단말기라도 통신사가 다르면 무용지물이 됐지만 이제는 어떤 단말기라도 유심만 갈아 끼우면 통신사 구분 없이 쓸 수 있다. 통신방식이 달라 새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왕따 신세였던 LG유플러스도 이제 아이폰을 소비자들에게 팔고 있다. 더이상 자신의 좋아하는 스마트폰의 유무에 따라 통신사를 고르던 시절은 끝났단 얘기다. 단말기 제조사들과의 역학관계도 달라졌다. 스마트폰 시장이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강구도로 재편된 상황에서 이통사들의 시장 주도권도 예전만 못하다. ‘갑’보단 오히려 ‘을’에 가깝다.
반대로 제조사 대신 파는 스마트폰 가격은 소비자들의 체감 가계통신비를 높이는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이통사들이 자사 대리점을 통해 단말기를 팔면서 높은 단말기 가격까지 통신비로 인식돼 소비자들의 성토 대상이 되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할 법하다.
현재의 시장 틀을 유지하는 한 정권 초 혹은 선거철마다 통신비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자급제 도입에 탄력을 붙이고 있다.
자급제가 도입되면 메가톤급 파장이 불가피하다. 벌써부터 수많은 영세 휴대전화 판매점들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실제 통신비와 단말기 출고가 인하로 이어질지도 검증이 필요하다. 분명한 건 달라진 환경에 맞게 시장구조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유통구조는 사업자나 소비자 모두의 불만만 가중할 뿐이다. 자급제 공론화는 그 변화의 서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