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갓!”
휴가로 해외 여행을 가면서 처음으로 이용한 에어비앤비 숙소. 부엌 오븐(서구형이라 이용법이 어려웠다)에서 빵을 데운 후 접시를 꺼내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남의 집,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외국인 집에서 사고를 쳤나 불안한 마음에 둘러보니 오븐 장갑이 그릴에 닿아 헝겊이 타버린 것. 이를 어쩐다. 현지 경찰한테 잡혀가는 것 아닌가, 주인이 불같이 화내면(그것도 영어로) 어쩌지 온갖 생각에 진땀이 났다.
앱을 켜고 에어비앤비 이용약관을 뒤져봤지만 좌절감만 커졌다. 그 많은 약관이 모두 영어로 써 있다. 예약, 결제 등 서비스를 신청하고 돈을 낼 때 까지만 해도 모두 한국어로 돼 있어서 이런 경우는 예상치 못했다. 차별금지 정책, 결제서비스 약관, 개인정보보호, 호스트 보호프로그램 등 소비자가 숙지해야 할 이용약관만 쏙 영어다. 어느 항목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도 막막하고 시간도 없어 짧은 영어로 주저리주저리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양해를 구했다. 혹시 엄청난 보상비를 요구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집주인은 헌 장갑이라 괜찮다는 회신을 줬다.
여행 뒤 주변에 경험담을 털어놓자 좋은 호스트를 만나 천만다행이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여행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온 뒤 물건 등이 파손됐다며 확인되지 않은 수리비를 호스트가 청구해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 국내 이용자들의 후기 등을 보니 수리비 분쟁이나 호스트의 일방적인 예약 취소, 사진과 다른 숙소 등으로 불만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와 있었다. 에어비앤비에는 ‘호스트 보증 이용약관’이 있어서 호스트 재산에 손실이 생기면 게스트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 집주인과 분쟁이 생기면 소비자가 대부분 피해를 떠안게 되는 구조다.
그나마 불리한 구조에서 한국의 소비자는 이용약관을 잘 숙지하고 만일의 상황이 생겼을 때 잘 대응하는 게 최선일 뿐이다. 에어비앤비는 2013년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용자수도 많다. 지난해 한국 에어비앤비 숙소를 이용한 고객(내·외국인)만 188만명으로 88% 늘었다. 해외 에어비앤비 숙소를 이용한 한국인 고객은 이보다 많다.
그런데도 에어비앤비는 여전히 영문 이용약관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는 더욱 약자일 수 밖에 없다. 국내 약관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고객이 알기 쉽게 약관을 한글로 작성하고 중요 내용은 부호, 색채, 굵고 큰 문자 등으로 명확하게 표시해야 한다. 에어비앤비코리아 측은 “한글약관이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번역에 시간이 걸릴 뿐”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세계 최대 혁신 숙박공유플랫폼으로 꼽히는 회사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