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누리 양이 열하루를 버텨 살아주었다. 벌레를 피해 도망했던 아이는 산 아래가 아니라 위로 뛰었던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고 수색한 이들 덕분이다.
아이에겐 발달장애가 있다. 나라가 우선 보호해야 할 국민이다. 군 장병과 경찰, 공무원 등 연인원 5700여 명과 구조견, 드론 등 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구조 이튿날 오전 일본 경제도발에 관한 정부 대책을 발표하고, 곧바로 충북대병원을 찾아 조양 가족을 위로했다. 조양은 만나지 않았다.
은누리가 귀환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정상국가라는 정의를 곱씹어본다. 인터넷 기사 댓글마저 분열이 없다. 수색견 달관이에 특식을 주자는 글에는 눈물이 핑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는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보다 다수의 실리를 우선하며 살아왔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휘호가 여전히 걸려있다.
"후손이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민족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느냐 물을 때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 신앙을 가지고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합시다."
우리는 반세기 넘게 근대화 신앙을 받들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토대는 1965년 청구권협정이었다. 국가가 지키지 못한 희생은 가리고 국가적 호구지책을 우선했다.
당시 논리가 아주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대적 논리와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선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국가는 개인에 앞서는가.
53년이 지나 대법원은 10년간 고민하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렸다. 희생한 개인 일생을 가해자도 아닌 국가가 몇 푼으로 때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눈 가리고 아웅할 필요 없다. 이에 대한 일본 경제도발은 현 대통령 때문인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대통령이 뒤집어야 했다는 것인가. 참 시대착오적이다.
식자층이란 이들이 더한다. 외교는 그런 게 아니라고 훈수를 둔다. 지도자가 감정싸움으로 국민을 곤궁에 처하게 했다고 왜곡한다. 그럼 누굴 희생시키란 말인가.
어쩌면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일본만이 아닐 수 있다. 선량한 일본인과 아직도 사대주의에 빠진 이들의 눈을 가리는, 열린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건 전체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