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아내가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아내에게 폰을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해냈다. 집근처 한 내과의원에서 올린 잔여백신 1개를 매의 눈으로 낚아챈 것이다. 근 30여차례 잔여백신 예약 경합에서 실패하며 시쳇말로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올 즈음이었다. 접종기관들이 수시로 카카오와 네이버를 통해 알림을 보냈지만 클릭하면 이미 누군가 빛의 속도로 가로채기 일쑤였다. 겨우겨우 아내 덕분에 수천대 1(?)의 경쟁을 뚫고 잔여백신을 맞게된 것인데, 마치 구원받은 느낌이다. 잔여백신 실시간 예약은 '광클'경쟁이고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이처럼 나름의 순발력을 발휘해 예약에 성공한 이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잔여백신 예약시스템에대해 '신의 한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노쇼'나 자연발생분으로 남은 백신의 폐기를 막는 것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 잔존하던 백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렸고 접종률까지 끌어올렸다. 남들보다 하루라도 먼저 일상에 복귀하고 싶은 갈망,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조바심을 절묘하게 자극했다. 이를 '넛지(nudge) 효과'라 했던가.
# 그런데 잔여백신 예약시스템은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것도, 아무나 만들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이 보유한 수준높은 방역 데이터와 국민의 디지털 리터러시(이해도), 모바일 플랫폼 기업의 협업 등 3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주민등록 제도와 전국민의 의료정보, 방역데이터가 실시간 취합되는 세밀한 인프라가 있어 가능했다. 이동통신 가입율 100%, 스마트폰 보급율이 90%가 넘어 언제 어디서건 본인인증과 식별이 모바일상에서 가능한 것도 주효했다. 국민들의 IT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적극적 참여도 이를 뒷받침했다.
디지털 인프라가 형편없어 아직까지 팩스로 감염자수를 취합하는 일본은 물론, 방역 목적임에도 개인정보 활용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서구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정부가 백신확보에 실기했지만 이를 만회한 것은 IT였다.
무엇보다 카카오, 네이버 등 모바일 플랫폼 업체들의 동참과 헌신은 높이 평가해야한다. 애초 이번 잔여백신 예약시스템은 카카오가 방역당국에 처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당국이 잔여백신 처리문제를 놓고 고심하자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제안한지 불과 몇주만에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통상 단위 서비스 개발 프로젝트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상 소요되는데 밤낮 가리지 않았다. 인건비나 운영비, 개발비용 역시 자체 충당한 것은 물론이다.
앞서 마스크앱 , QR코드 전자출입명부에서 처럼 국가시책에 군소리없이 동참했다. 국민 기업으로서 당장의 사업적 득실보다는 공적 기능과 국난 극복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한 행보다. 한국시장에서 떼돈을 벌어가면서도 공적 기여에 인색한 구글과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외국계 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행보다.
# 당혹스러운 것은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카카오는 최근 고용노동부로부터 주 52시간 초과근무 등의 이유로 시정조치를 받았다. 네이버도 최근 특별근로감독을 받고있는데 여기에 52시간 위반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더욱이 잔여백신 예약서비스 첫 날 카카오톡에 사람이 몰려 2시간 가량 접속이 안되자 과기정통부는 이른바 넷플릭스법을 적용해 카카오에 원인과 오류조치내용, 재발방지책을 조사했다고 한다. 물론 법적용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정부의 간절한 요청과 공적 사명감에 밤을 지새우며 개발했는데 돌아온 것이 법위반 통지였다면 어떤 심정일까. 일각에서는 정부가 마치 기업들의 참여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기업들의 동참과 헌신이 지속되길 바란다면, 적어도 솔선수범하며 나선 이들에게 뒤통수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