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시간'은 지났다. 취임 후 작은 행보 하나하나가 큰 주목을 받았고, "우리의 파격이 여의도의 파격이 돼야 한다"는 이 대표의 말처럼 언론은 기존 보수정치에서 없었던 그의 파격에 주목했다. '따릉이 출근' '취임 후 첫 호남 행보' '지하철 이동' '나는 국대다' 한 달 여 신선하다는 호평 일색이었지만, 이제 본격적인 실험대에 올랐다. 당내에서 '0선 대표'의 한계와 '리스크'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권에 들어왔지만, 그 흔한 비례대표 한 번 하지 못했고, 강남은커녕 보수당의 험지인 서울 노원구에서 내리 낙선했다. 하지만 10년 간 방송 패널로 독특한 입지를 다졌고,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런 정치 역정이 기성 정치를 불신하는 민심과 상승 작용을 일으켰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망이 이준석을 통해 투영됐다.
최근의 우려와 비판은 본인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당 대표로서 해야 할 말과 개별 정치인으로 할 말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으로 논란의 한 복판에 섰고, 이 과정에서 뜬금없이 통일부 폐지에 '작은 정부론'까지 들고 나왔다.
통일부 폐지의 경우 말의 형식과 방식, 내용 모두 적절치 못했다. 엄연한 분단 국가에서 통일을 추구한다는 상징성이 있는 부처다. 특히 북한은 주적이자 한편으론 외교 협상과 통일의 대상이다. 국방부, 국정원, 외교부, 통일부 등 다양한 부처의 의견이 때론 충돌하고, 이런 이견을 조정하고 협의하는 과정에 완성도 높은 대북 정책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보수와 진보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대북정책과 북한의 태도로 통일부 역할과 위상이 심한 부침을 겪는다는 데 있다. 통일 정책은 영속적일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 경험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기능과 역할을 조정해 보완해야지 없앨 문제가 아니다.
'작은 정부'도 정부의 규모를 축소하자는 것은 일면 타당하지만, 단순히 부처 몇 개 줄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재정지출을 줄이고 정부의 규제와 권한을 대폭 줄여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자는 거다. 영민한 이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논쟁 방식도 적합하지 않았다. 담론이 주는 무게가 있다. 단순히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설전을 벌이며 결론 낼 만큼 가벼운 소재가 아니다. 급기야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해놓고 당내 반발이 일자 이를 백지화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논쟁을 즐기는 이 대표 특유의 방식은 이해하지만, 이젠 더 이상 방송 패널이 아니다. 당 대표의 말은 자칫 당론으로 비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고, 당내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분란을 초래할 수 있다. 2030의 상징자본을 획득한 이준석의 강점, 정권교체에 대한 당원들의 열망에 중진 의원들도 적극 협력하는 분위기가 읽혔다. "정치나 정책에서 굵은 주제들, 오랫동안 해결 안되고 논란에 있는 주제들은 다 이유와 역사가 있다. '일도양날' 그렇게 쉬었으면 진작에 다 해결했지 않았겠나. 그렇게 쉽게 보면 안 된다"는 한 중진 의원의 고언을 이 대표가 새겨들었으면 한다.
이 대표 앞에는 지나온 10년보다 더 긴 정치 인생의 길이 놓여 있다. 30대에 당 대표까지 한 마당에 국회의원, 대선…선택의 폭도 그리 넓지 않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낯선 보수의 전략적 선택. 한번 반짝 하고 사라질 게 아니라면 조금은 긴 호흡을 갖고 정치를 했으면 한다. '이준석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정치적 색깔과 비전을 현실 정치에 제대로 녹이길 기대해본다. 어렵게 싹 틔운 '청년 정치'가 보수당을 넘어 정치권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우군이 없다고 한탄할 것도 없다. 이준석의 적은 이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