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 받으면 바보"라는 전세대출의 역습[우보세]

권화순 기자
2021.08.24 05: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금융당국이 은행 신용대출 개인 한도를 연소득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은행권에 요청했다. 사진은 17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개인대출 현판 모습. 2021.08.17. yesphoto@newsis.com

"상반기 가계대출을 7% 가까이 늘려 올해 목표를 이미 채웠다. 연간 5~6%를 맞추려면 동결이나 그 이하로 가야한다."

금융당국 수장도 아닌 부동산 정책 책임자인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입에서 나온말이다.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19일 몇몇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지난해부터 폭증한 가계대출을 지금 수준 혹은 그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얘긴데, 사실상 대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했다. 과장된 표현 아닌가 했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우리은행이 줄줄이 부동산 대출을 한시 중단하기로 했다. 은행 고객들은 고신용자라서 특정은행 대출이 막힌다고 돈을 못 빌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은행이 본업인 '대출'을 포기하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더믹 정점인 지난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관리를 포기했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유동성을 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도 일부 은행들이 연간 목표를 채울 정도로 관리가 느슨했다. 7월 강화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로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을 수 있단 자신감도 없지 않았다.

이같은 정책 기조는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차주별 DSR이 강화된 7월 가계대출이 15조원 불어나 전달 증가액 10조원을 넘었다. 규제가 강화됐는데도 대출이 더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전세대출' 에서 터졌다. 7월 전세대출은 3조원 가까운 2조8000억원 불었다. 주택담보대출의 '메인'인 집단대출 증가액 1조9000억원을 넘어선 규모다.

전세대출이 차주별 DSR 규제를 무력화 시킨 건 이 대출이 DSR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DSR 산정시 전세대출 원금은 '갚아야 할 빚'에서 빠졌다. 매월 갚는 이자만 반영된다. 아무리 많이 받아도 한도규제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 등 3개의 공적기관이 경쟁적으로 대출원금의 90%를 보증한다. 보증을 믿은 은행들은 돈 떼일 염려 없이 전세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리스크(위험)가 낮으니 전세대출 금리는 주담대보다 낮은 역전현상도 나타났다.

전세대출은 연소득 이내로 한도관리에 들어간 신용대출의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세대출은 현금있는 무주택자도 "안 받으면 바보'인 대출이 됐다. 이렇게 막 풀려나가는 전세대출은 '갭투자'를 유발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된다. 갭투자자는 전세금을 올려 부족한 매입자금을 충당하고 세입자는 쉽고, 싼 전세대출을 받아 갭투자를 돕는다. 금융당국보다도 국토부가 전세대출 관리에 더 민감해 하는 배경이다.

정부도 전세대출의 부작용을 알고 있지만 섣불리 규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전세대출은 실수요이며, 무주택자를 보호하는 제도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잘못 건드렸다간 "월세 살란 말이냐"는 폭탄도 맞는다. 정부가 '직접규제'를 못하고 금융회사 총량대출이란우회수단을 꺼내는 속내다.

그러나 전세대출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란 걸 정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갭투자를 유발하며 집값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불쏘시개'다. 이제는 전세대출을 본격 고민할 때가 됐다.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권화순 건설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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