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물 반컵짜리 나라곳간

세종=김훈남 기자
2021.09.08 03:40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2022년 예산안 및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브리핑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스1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예산안이 공개됐다. 총 지출 604조4000억원. 예산 600조원 시대의 시작을 차기 정부의 몫으로 돌리려던 문재인 정부가 결국 스스로 그 문을 열어젖혔다.

내년도 국가채무는 1068조3000억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2%다. 지난해 2021년도 예산안 제출 당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전망했던 2022년도 국가채무비율 50.9%에 비해선 0.7%포인트(p) 낮다.

예산안을 발표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습은 유명한 '물 반 컵' 일화를 떠올리게 했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봐야 할까,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

잠시 시계를 1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해 내놓은 한국판 재정준칙이 '맹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현재 흐름이라면 2025년 도입 첫 해부터 준칙을 준수하기 어렵다"고 수차례 반박했다. 겨우 0.7%포인트 차이를 두고 지난해까지 물(빚)이 "반 컵이나 찼다"던 호들갑이 이제 "아직 반 컵밖에 차지 않았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홍 부총리는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과 비교 시 내년 국가채무가 965조원에서 1068조원으로 늘어난다"면서도 "세입여건 개선 등으로 내년 (통합)재정수지는 GDP 대비 -4.4%에서 -2.6%로 크게 낮아진다"고 말했다. 올해 새로 만든 국가재정전망에선 "2024년 기준 국가채무비율이 2.2%포인트 축소된다"고 밝혔다.

부총리의 말처럼 정부의 자신감은 세금에서 나온다.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상 2022년도 국세수입 전망은 296조5000억원, 이번 예산안의 국세수입은 338조6000억원이다. 올해 7월 2차 추경 편성 과정에서 지난해 세수전망을 너무 적게 잡았다며 25조원 넘게 늘린 이후 2개월만에 13조원 가까운 세수를 늘려잡은 결과다.

하나 더. 정부는 물을 채우는 컵의 크기를 늘려잡았다. 올해 예산안의 명목GDP는 2128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재정운용계획 2104조7000억원보다 24조원 많은 금액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6월 두 차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수정한 경제성장률 전망을 반영했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우리가 보는 재정건전성 수치는 재정수지 혹은 국가채무를 명목GDP로 나눈 값이다. 세입을 늘리면서 분자는 줄어들고 GDP 추가 성장을 가정하면서 분모는 커졌으니 재정건전성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여유가 생겼으니 더 써도 된다'는 게 이번 예산안이 주는 메시지다.

코로나19(COVID-19) 재유행이 한창인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세수와 GDP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반면 돈을 쓰겠다는 지출예산은 높은 확률로 다가올 현실이다. '나랏빚이 경제규모의 절반 밖에 안된다'는 이번 발표에 안도감보단 불안감이 드는 이유다.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에서 한 것처럼, 초과세수 발생 시 국가채무를 갚도록 한 국가재정법 취지에 따라 일부 채무 상환에 예산을 배정했더라면 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노력이 돋보였을 터다. 현 정부 마지막해까지 확장재정을 외치면서 차기 정부인 2023년부터 재정정책을 정상화한다는 경제부총리의 설명이 못 미더운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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