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는 은메달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 경제지 포춘은 20일 막을 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관련 기사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비자는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서 오랫동안 단독으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현금도 쓸 수 있지만 올림픽 참가자들은 대부분 비자를 통해 카드결제를 한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제3의 수단이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 결제업체를 제친 금메달 수상자로 포춘이 꼽은 디지털 위안화다.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이 이번 대회에서 야심 차게 세계에 공개한, 중앙은행이 만든 디지털 화폐(CBDC)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비자의 스폰서 계약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중국 측은 이는 그저 현금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대회 기간 중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디지털 위안화가 하루 200만위안(3억8000만원) 이상 사용됐다고 한 언론에 밝혔다.
디지털 화폐는 스마트폰 내 '디지털 지갑'이나 교통카드처럼 생긴 '하드월렛'에 담아 쓸 수 있다. ○○페이(간편결제)로 결제하듯이 갖다 대는 식으로 결제할 수 있다. 쓰는 입장에서야 뭐가 다르냐 하겠지만, 디지털 화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들이 있다.
은행계좌가 없는 사람도 현금을 지갑에 넣듯 디지털 지갑에 디지털 현금을 넣고 다니며 쓸 수 있다. 중앙은행은 실물로 돈을 찍어둘 필요가 없으니 비용이 줄고 보안성도 높일 수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변화도 예상된다.
탈중앙화를 내세운 암호화폐를 다 틀어막은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실제 사용될 만큼 준비 속도도 빠르다. 여기엔 정부로부터 규제 대상이 된 기술기업들의 페이 서비스가 급성장 한 것도 배경에 있다.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억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국은 더 큰 목표를 겨냥한다.
국제금융결제망인 SWIFT(국제은행간 통신협정)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은 3.2%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4위에 올랐다. 엔화(5위)보다 위다. 달러화(39.92%)에 비하면 아직 초라하지만 개도국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는 등 위안화 국제화를 밀고 있는 중국이 일정 성과를 거둔 셈이다. CIPS라는 자체 결제망도 있기 때문에 실제 위안화 비중은 더 클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 화폐를 더 키울지 모른다. 홍콩 유력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일 사설에서 "디지털 위안화의 부상은 달러화의 지배력에 도전한다"고 주장했다. 효율성에서 우위에 있는 디지털 위안화가 기존 SWIFT 역할을 줄인다는 것인데, 중국은 많은 나라에 최대 교역국이니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생각이다. 또 SWIFT는 달러화가 주도하는 데다 미국이 금융 제재를 내리는 수단으로도 쓰여 미국에 반감 가진 국가들은 디지털 위안화를 대안으로 여길 수 있다.
이제 미국도 바빠졌다. 최근 블룸버그와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주 정부 기관들에게 암호화폐 및 디지털 화폐(CBDC)에 대한 연구를 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디지털 달러화 발행 준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전직 CIA 분석가가 "인민은행이 새로운 국제결제 질서를 조성하려고 한다"고(야야 파누지) 말하는 등 미국에서도 디지털 위안화가 달러화의 지위에 위협이 된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지난달 공개한 관련 토론 보고서에는 디지털 달러화가 국경간 지불 속도를 높이고 새로운 기술에 달러 사용을 쉽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100여개국이 디지털 화폐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이미 1단계 연구를 마치고 오프라인 결제, 개인정보 보호 강화 등을 시험하는 2단계 연구에 들어갔다.
은행 기능 약화 및 대출 금리 상승, 개인정보 문제 등이 당장 예상되지만 발행량 제한 등 여러 장치를 두고 머지 않아 디지털 화폐는 우리 일상에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