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광화문]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2022.03.07 04:34

이틀 후면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호(號)를 이끌어갈 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하지만 '차선도 아닌 차악을 택해야 하는 선거'라 할 만큼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그럴까. 대선 이후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도 마찬가지다. 유력 후보마다 '창업강국'을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알맹이 없는 도돌이표 공약만 넘쳐나니 그럴 법도 하다.

"사실 대선 결과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벤처 1세대 한 CEO(최고경영자)는 이번 대선을 '개와 늑대의 시간'에 빗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말길 바랄 뿐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혁신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구굴도, 아마존도, 메타(옛 페이스북)도 생존을 고민하는 시대입니다. 모두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허송세월하다간 머지않아 늑대가 우리 미래를 덮칠 겁니다."

프랑스에선 빛과 어둠이 뒤섞여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황혼녘 저기 보이는 실루엣이 나를 반기는 개인지, 헤치려고 달려드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혼돈의 순간을 뜻한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으로 세상이 급변하지만 우리의 대응수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 두렵다는 얘기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창업생태계는 빠르게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서도 제2벤처붐 열기가 이어지면서 스타트업 창업은 2020년 12만개사를 넘어섰다. 2000년 제1벤처붐 때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인 유니콘도 지난해에만 7개사가 늘어 역대 최다인 18개사를 기록했다. 벤처·스타트업 고용인원은 지난해 기준 76만4912명으로 전년(69만8897명)보다 9.4%(6만6015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고용증가율(3.1%)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전체 고용인원의 약 27%가 29세 이하 청년층이었다. 일자리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벤처·스타트업이 우리나라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서서히 자리잡아가는 모습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의 재정지원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데다 창업 생존율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내 스타트업의 5년차 생존율은 29.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58.3%)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재창업 도전도 미국과 중국(평균 2.8회)에 비해 저조한 수준(1.3회)이다.

아직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성장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국회는 올해 창업생태계의 마중물인 모태펀드 출자사업 예산을 7200억원에서 5200억원으로 2000억원 삭감했다. 뿐만 아니라 혁신창업사업화자금, 재도약지원자금 등 다른 창업지원 예산들도 줄였다. 반면 대선을 앞두고 SOC(사회간접자본) 등 토건예산은 역대 최대 수준인 28조원으로 늘렸다. 이러니 창업강국이란 공약이 표를 의식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신산업 육성의 가장 큰 걸림돌인 규제개선 문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네거티브 규제를 약속했지만 규제에 내몰려 해외를 전전하거나 기득권의 압박에 존폐위기에 처한 스타트업들의 문제에는 눈과 귀를 닫는다. 이렇듯 현장을 모르니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의 장밋빛 공약만 넘쳐나는 것이다.

이대로면 어렵게 지핀 제2벤처붐도 거품만 남기고 사라질 수 있다. 그때는 늑대가 아니라 괴물이 우리 미래를 덮칠지 모른다. 이틀 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려면 무엇보다 대선 과정에서 갈가리 찢어진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고, 미래 성장의 해법과 전략을 고민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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