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대 기업은 가스프롬이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은 미국이지만 기업으로는 가스프롬이 글로벌 1위다. 러시아 정부가 과반의 지분을 보유하고 런던, 프랑크푸르트, 싱가포르에 상장된 DR를 통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약 25%를 보유했다.
러시아의 석유가스산업은 19세기 말 노벨 형제와 로스차일드 가문이 발아했고 니키타 흐루쇼프 치하 6~8차 경제개발계획의 핵심으로 본격 성장했다. 1965년 가스산업부가 설치돼 시베리아, 볼가 등 지역개발이 본격화한다. 보리스 옐친 정부 때인 1989년 러시아 전역 민영화 작업의 일환으로 가스산업부가 민간기업 가스프롬이 됐다.
가스산업부 장관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이 가스프롬의 초대회장이 됐는데 체르노미르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막대한 회사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가스프롬 이후에는 러시아 총리를 지냈다. 부패가 심해 나중에 블라디미르 푸틴에 의해 경질됐지만 어찌 된 셈인지 아무런 책임도 추궁당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대사까지 지냈다. 푸틴은 가스프롬을 국영화한 뒤 최측근인 알렉세이 밀레르에게 맡겼다. 밀레르는 2001년 이후 지금까지 회사의 CEO다.
가스프롬은 푸틴의 내셔널챔피언 정책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한다. 국가가 집중적으로 지원, 육성하고 대신 러시아 국내 에너지 수급과 가격안정에 기여한다. 나아가 러시아의 대외정책에서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유럽국가의 대다수가 가스프롬의 천연가스에 의존하는데 핀란드, 슬로바키아 같은 나라들은 의존도가 거의 100%다.
러시아 의회는 가스프롬이 독자군대를 보유하도록 승인하고 러시아 내무부가 무기를 공급하게 했다. 그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테러로부터 파이프라인을 보호할 필요성 때문이다. 이는 과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독자병력을 보유한 것을 연상시킨다.
정실주의가 팽배한 러시아 사회에서 가스프롬은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어지간한 인맥 없이는 입사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른 국영기업들의 경우도 사정이 비슷해서 러시아에서는 가족배경이 없는 우수한 인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의료, 학문, 예술 등 분야에 주로 진출한다.
'녹색경제'의 대표주자 독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북해 해저가스관 프로젝트 '노드스트림2'를 전격 폐기했다. 2018년부터 110억달러가 투자된 사업이다. 천연가스의 약 50%를 가스프롬에서 받는 독일이 육상 파이프라인 통과국 폴란드, 우크라이나를 다독이면서 어렵사리 성사시킨 사업이다. 사업주체인 가스프롬 스위스법인은 도산했다. 프로젝트는 부활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녹색당까지 포함한 거국적 지지로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대러시아 정책기조가 폐기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에 미국의 9·11 테러에 비견되는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1936년 스페인내전 당시처럼 외국인들도 참전했다. 급기야 독일이 재무장의 시동을 걸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가스프롬 주가가 폭락했는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충격으로 전 세계가 진행 중인 '탄소제로' 프로젝트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