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움이 민중의 비위를 거스른다 [광화문]

양영권 사회부장
2022.07.26 03:00

'내 너그러움이 네 비위에 거슬리느냐?'(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 20장)

2000년 전 나자렛 출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늘 나라'라는 이상향의 예시로 들려준 '포도원 일꾼'의 일화는 당시나 지금이나 '공정'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 여럿을 순차적으로 데려왔다. 해가 떨어지자 포도원 주인은 새벽같이 밭에 나와 일한 사람이나 정오, 오후 3시, 오후 5시에 나온 사람이나 모두 같은 품삯을 쳐 줬다. 이에 하루종일 일한 일꾼이 "나중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을 온종일 더위에 시달리며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취급하나"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네 것이나 가지고 가거라"며 역정을 냈다.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민중에 의해 고발돼 끌려온 예수를 로마 총독은 "죄를 찾지 못했다"며 놓아주려 했다. 민중은 십자가형을 지속되게 요구했다. 나자렛 예수가 이처럼 노여움을 산 이유는 그가 가르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을 세속의 민중은 '공정의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표되는 동해복수법에 기반한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율법주의자들의 분노를 산 것도 당연하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도 '공정의 상식'을 건드린다. 미리 유산을 챙겨 나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아버지는 좋은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연다. 이때까지 아버지 말을 들으며 묵묵히 일만 했던 첫째 아들은 동생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아버지에게 난생처음 반항하며 "나한테는 지금껏 염소 한 마리 즐기라고 주신 적 없지 않느냐"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인과응보, 자업자득의 원칙'이 작동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믿는다. 첫째의 눈에는 성매매 여성들과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돌아온 동생을 질책 한마디 없이 품은 아버지가 절대 공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아버지의 편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응당한 대가를 받는 '공정한 세상'을 믿으려 한다. 예측가능하고 정연한 힘이 우리의 인생사를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자업자득의 원칙 없이 제멋대로 돌아간다고 믿으면 굳이 인생을 계획할 필요가 없다. (리처드 H. 스미스, 쌤통의 심리학)

공정의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혼란을 막고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차원이다. 그 거부감은 병자를 낫게 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가르친 동족 지도자를 사형시킬 정도다.

냉정해 보이지만 우리의 유전자가 행동하는 방식이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상대방의 협력은 협력으로 보답하되 배반은 응징으로 되돌려주는 '팃포탯(tit-for-tat) 전략, 즉 인과응보의 법칙은 이기적인 유전자들이 서로 협력을 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다. '공정'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개인들의 협력과 이타적인 행동을 끌어내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내놓은 '빚투(빚내서 하는 투자) 구제책'을 둘러싼 논란은 성공의 이득은 개인이 취하고 실패의 손해는 공동체가 지는 데 대한 문제 제기다. 근본을 따지자면 '인과응보'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데서 생기는 혼란과 불안이 원인이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직원 채용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너그러움'에서 소외된 이들의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박탈감(재물이나 자격, 권리를 빼앗긴 느낌)'을 갖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누리는 혜택은 자신에겐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정의 상식을 거스를 때는 지도자의 너그러움은 선한 의도에서 나올지라도 민중의 노여움을 부른다. 하물며 그 '너그러움'이 자신이나 측근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앞선 정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와 조국 자녀 입학 논란으로 대표되는 '불공정' 논란을 겪으면서 국민과 멀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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