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글로벌 공급망 재편기의 생존법

임동욱 기자
2024.03.05 05:25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애플은 ams오슬람(OSRAM)과의 마이크로LED(발광다이오드) 협력계약을 모두 취소했다. 글로벌 2위 LED기업인 ams오슬람은 애플에 마이크로LED를 공급하는 계약에 '코너스톤'(초석) 프로젝트라는 이름까지 붙였으나, 예기치 못한 취소로 사업전략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마이크로LED는 초소형 LED 소자가 각각 빛을 내 화소 역할을 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다. 현재 주요 모바일 기기에 탑재되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보다 10~100배 밝은 화면을 구현할 수 있고, 화면 속도도 빠르다. 그러나 공급 차질 등으로 가격은 현재 비슷한 크기의 OLED 패널보다 2.5배에서 3배 가량 높다. 또 높은 정밀도가 필요해 대량 생산이 까다롭다.

이같은 가격과 공정 문제를 고민한 끝에 애플은 '리셋'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애플은 마이크로LED를 탑재한 애플워치 신제품을 2026년 출시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취소 사태로 일정 연기와 함께 새로운 공급선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로 불리는 ASML은 지난해 53대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판매했다. 2022년의 40대 보다 13대 늘었다. 5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이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ASML 한 곳 뿐이다. 한 대에 수천 억원이 넘는 이 장비를 사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일찌감치 줄을 섰다. 하지만 제품을 받으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주문이 밀려든다고 생산을 마구 늘릴 순 없다. ASML은 최근 연차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노광장비의 숫자는 광학부품 독점 계약을 맺은 칼 자이스의 생산 능력에 달렸다"고 공개했다. 더 나아가 자이스가 공급 관계를 중단하거나 장기간 부품을 보내주지 않을 경우, 제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네덜란드 기업인 ASML과 독일 렌즈회사 칼 자이스는 오랜 파트너십을 자랑한다. 당초 최대 15년을 예상했던 EUV 개발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졌지만, 두 기업은 서로의 기술을 의지하며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이들은 결국 30여년 만에 EUV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후 10년 이상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에 대적할 수 있는 기술은 나오지 않았다. 영화 같은 '콜라보'와 '해피엔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주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부부에게 직접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이 자리에 사장단 등 배석자는 없었다. 그만큼 '개인적' 인연이 강조된 만찬이었다. 이 회장은 저커버그 CEO와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10월 한국 방문 시 두 사람은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만찬을 했는데, 10년 뒤 만남에선 특별한 손님에게만 개방하는 삼성 영빈관 '승지원'으로 격을 높였다.

글로벌 공급망이 핵심 경영 이슈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협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최첨단 기술 앞에선 기존의 '갑·을' 구분은 무의미하다. 단순한 계약 관계가 아닌 '진짜 파트너'가 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점에서 총수들의 '밥 한끼'는 생존을 위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임동욱 /사진=임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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