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아침에 미국에 도착했다. 마틴 루터 킹 휴일이고 시차도 있어서 하루 종일 취임식과 후속 뉴스를 보면서 보냈다. 소감을 요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변한 것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의 트럼프가 아니었다. 지난 4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겪었고 총격 시해를 몇 밀리미터 차이로 피하는 등의 일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나이도 더 높아졌다. 트럼프는 1946년생이니 거의 80이다. 사실 이 하나로도 거의 기적이다.
경쟁 측 민주당과 그 후보들의 거의 어이없는 처신과 노선도 트럼프의 복귀에 한몫했다. 역사상 최대의 대선 패배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일등 공신이다. 역사상 가장 일 안한 대통령, 가장 기자회견 안 한 대통령, 가장 백악관을 많이 비운 대통령이다. 고령 문제도 컸을 것이다. 대통령이 그러는 동안 관료들은 시간과 예산을 낭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책 없는 대통령 후보를 내고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했다. 임기 마지막 한 시간 중에 가족과 측근들을 사전 사면하고 퇴임한 기록도 남겼다. 과거에 트럼프도 감히 실행하지 못한 일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24시간 동안 무려 26건의 행정명령을 발효시켰다. 파리기후협약과 WHO 탈퇴도 포함된다. 과거 1-2건이 보통이었다. 2021년 의회를 습격한 폭도들도 다수 풀려났다. 틱톡도 90일 동안 연명하게 되었다. 언론과 카메라 앞에서 서명을 하고 지지자들이 모인 집회에서 서명한 펜을 야구공처럼 객석으로 던지는 쇼를 연출했다. 거의 모든 사안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무차별로 쏟아지는 질문에 상세히 답했다. 나이를 의심할 정도로 모든 문제에 소상했고 의견이 뚜렸했다. 놀라운 일이다. 취임 초기 강행군에 지치는 기색도 없다. 다보스포럼에 영상으로 참석해서 연설하는 기염을 토했다. 밴스 부통령은 선거기간에서와 마찬가지로 든든한 조력자다.
행정명령의 백미는 불법 체류자들 중에 악성 범죄자들을 추방하는 명령이다. 왜 지금껏 전과 16범이 건재하고 돌아다니는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체포되었다. 경찰에 잡혀가는 순간 트럼프를 욕하고 바이든과 오바마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감사를 표하는 기이한 장면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전파를 탔다. 범죄자들을 군용기로 추방하는 퍼포먼스가 시전되었다. 반대측에서는 나라의 돈을 들여 군용기로 추방하는 장면을 쇼라고 평가절하했지만 미국의 수형 시설에 두거나 보석해서 내 보내는 경우에 비해 돈이 훨씬 적게 든다고 한다.
취임 며칠만이지만 트럼프는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LA를 찾았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초청도 받지 않고 비행장으로 마중 나왔다. LA와 샌프란시스코로 대표되는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의 전통적 아성이다. 피해 현장을 돌아보고 소방관들도 참석한 라운드 테이블을 가졌는데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모든 레드테이프를 걷고 최대한 지원한다는 약속으로 특히 소방관들과 경찰관들의 열열한 환호를 받았다.
이 미팅에서 DEI와 WOKE를 표방해 온 민주당 시장과 가벼운 설전이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현지의 책임자가 가장 잘못이 크다. 보수측에서는 진보 진영의 수십년에 걸친 잘못된 환경 정책이 이런 대형 사고를 불렀다고 공격한다. 물론, 그동안 이런 사고가 안 났다는 점은 논외다. 사고가 결국 났기 때문이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다소 우려스러운 점은 새 행정부가 너무 업되어있다는 점이다. 열심히 시작하는 것은 좋은데 좀 지나치게 아드레날린이 있다. 특히 새로 등용된 젊은 관료들은 약간 과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걱정될 정도다.
다시 강조하지만 트럼프는 변했다. 일론 머스크가 다소 오버하고 AI와 인프라 관련 트럼프 정책과 반대되는 언행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내부적인 마찰을 일으켰는데 과거 같았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번에는 '자기들끼리 잘 해결하겠지요'하고 시큰둥하게 넘어갔다. 이제는 트럼프가 아닌 머스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느껴졌다. 머스크는 히틀러의 나치를 연상시키는 손 인사를 해서 더 시끄러워졌다.
출범 초기라서 그런지 모두 분주하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다. 덩달아 세계 각국 정부도 부산하다. 미국의 변화에 맞추고 새로 미국과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전 세계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51번째 주로 편입하라는 제안을 받은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팔라는 요청을 받은 덴마크는 비상이다. 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던 트뤼도 총리는 결국 물러난다. 취임 전에 트럼프가 25% 관세를 예고하자 부랴부랴 달려와 만났는데 조롱만 당했다.
운하를 되돌려주게 된 파나마도 우울하겠다. 이 와중에 러시아, 중국, 북한도 열심히 계산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 산업국들 중 단 한 나라, 한국만 워싱턴의 부산한 움직임과 관련해서 거의 실종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