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아파트는 보유하고 있으면 반드시 가격이 올라간다는 '강남 불패 신화'가 있다. 최근엔 미국 주식은 보유하고 있으면 반드시 오른다는 '미국 주식 불패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6일까지(결제일 기준 1월6일~2월10일)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49억7840만달러로 집계됐다. 원화 가치로 6조9444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는 2024년 같은 기간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인 14억210만달러에 비해 3.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2년 전인 2023년 같은 기간의 5억6146만달러에 비해서는 8.8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최근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가 악재로 하락할 때 더 사는 공격적인 저가 매수의 양상을 보인다. 지난 1월27일 중국 AI(인공지능) 스타트업 딥시크의 급부상으로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1월23~29일 주간 순매수 규모는 17억7895만달러로 급증했다. 이는 머니투데이가 2022년 1월부터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로 최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소식에 미국 증시가 흔들렸던 1월30일~2월5일 사이에도 주간 순매수 규모는 10억달러에 육박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테슬라나 엔비디아 같은 대형주는 물론이고 양자컴퓨팅 회사인 리게티 컴퓨팅이나 AI 기반의 의료회사인 템퍼스 AI 같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에도 한 주간에 수천만달러(수백억원)의 순매수를 서슴지 않는다.
나스닥100지수나 ICE 반도체지수 등 특정 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3배, 테슬라나 엔비디아 같은 개별 주식의 하루 수익률을 2배 따르는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에도 과감하게 투자한다.
미국 증시가 급락할 때 공포감 없이 뛰어들어 2~3배 레버리지 ETF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200배에 달하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같은 고평가 주식도 두려움 없이 저가 매수하는 용감함, 또는 무모함은 최근 국내 투자자들만의 특징은 아니다.
미국 증시 전체적으로도 개인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저가 매수 행태가 두드러진다. 지난 10년간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수가 가장 많았던 5일 중 4일이 지난 5주 사이에 집중됐다.
X 같은 소셜 미디어에는 이같은 투기적 열풍이 "buy the f***ing dips"라는 문장에서 단어 앞 글자만 딴 'BTFD'로 표현되고 있다. 'BTFD'는 저가 매수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떨어지면 무조건 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루치르 샤르마 록펠러 인터내셔널 회장은 지난 10일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문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4.25~4.5%로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제로(0) 금리 때와 같은 투기 열풍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큰 손실이 생길 만한 상황이 닥치면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위기 때마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며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을 살려내는 것을 경험했다.
가깝게는 2023년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사태 때 모든 예금을 지급 보장하고 은행 시스템에 4000억달러를 투입해 증시 하락을 조기에 차단한 것을 목격했다. 지난해 8월 초에는 고용지표 부진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연준은 당장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큰 폭인 1%포인트 인하했다.
미국 증시는 악재로 하락할 조짐만 보이면 부양 조치들이 나오니 3년째 조정 없는 랠리를 지속하고 있다 . 결과적으로 투자할 때 손실은 제한되고 수익은 무한대가 된다. 이같은 리스크 대비 수익의 불균형 상태가 이어지니 투기 열풍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보장해주는 '미국 주식 불패 신화'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샤르마는 2022년처럼 인플레이션이 급등해 연준이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거나 재정 위기나 다른 충격적인 사건으로 미국 정부가 시장이 만족할 만한 너그러운 구제책을 제공하지 못할 때까지 'BTFD'가 유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돈을 풀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까지 버블 파티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역사를 돌아보면 버블은 언제나 터졌고 돈의 힘으로 적정 가치 이상으로 올라간 것은 반드시 떨어져 제자리를 찾았다. 정부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듯이 적정 상태로 되돌아 가려는 시장의 힘도 거스를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러니 현재의 투기 열풍에 참여하지 못해 바보가 되든지, 버블 막판에 뛰어들어 바보가 되든지 각자 선택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