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5.02.14 02:05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정치가 사법에 포획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고소·고발로 손쉽게 처리하려는 풍조가 자리잡으면서 정당과 정치인들이 앞장서 사법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결과다. 그로 인해 사법이 정치 위에 군림하는 듯한 착시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탄핵정국 속에서 그 인과관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하나의 가지라면 그 뿌리는 사법의 '선택적' 정치화다. 대통령 체포 및 구속영장 발부과정에서 담당판사의 이념적 성향과 무성의함이 논란이 되더니 업무시간에 SNS 활동, 주식투자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특정 이념 성향의 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헌법재판소를 과다 대표한다는 사실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도가 50% 초반으로 하락했고 불신한다는 응답은 45%에 육박했다. 이는 헌재가 자기편에겐 너그럽고 상대편에겐 가혹하다는 인식을 키운 데 따른 결과다. 피청구인의 방어권 보장과 적법절차를 둘러싼 논란은 재판부 스스로 불러온 신뢰위기의 핵심요인이다.

정치와 사법의 위험한 밀월관계는 민주화 이후 더욱 강화됐다. 정치권력은 사법부가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지하고 법적으로 뒷받침해줄 기관이 되길 원한다. 국회의원 중 법조인 출신이 꾸준히 증가하는 흐름도 이를 방증한다. 제22대 국회의원 300명 중 법조인 출신이 6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특히 야당 내 비율이 더 높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행태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상호 견제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 등 사정기관을 매개로 주인-대리인 관계를 형성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법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할 것이라는 국민적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일부 헌법재판관 탄핵을 요청하는 국민동의청원이 높은 지지를 얻어 국회에 발의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은 재판관 개인 성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한다.

차라리 솔직해지자. 정치의 사법부에 대한 과도한 의존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선택적 정치화는 분명히 경계해야 하지만 법과 정치의 완전한 분리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과거에 언급했듯이, 특히 헌법은 법과 정치가 교차하는 영역에 존재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정치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해친다. 원초적이지만 거친 정치권력을 더 세련되게 행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사회계약'이다. '신의성실'의 사회계약 원칙에 입각한 법과 제도는 결국 정치권력으로부터 파생된 권력이다.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은 결국 원초적 정치권력과 분리될 수 없다. 민심은 곧 천심이고 법과 제도는 주권자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민심이 지향하는 방향과 법의 적용·해석이 괴리를 보일 때 기왕의 사회계약은 유지되기 어렵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새로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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