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하던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이 협상국면에 접어들며 세계 경제가 잠시 숨을 고르게 됐다. 미국은 대중관세 일부를 유예했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중국도 양보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성과를 거두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와중에 한국 사회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복잡하고도 분열적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발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트럼프식 강경압박에 더 큰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다. 특히 우리 젊은 세대의 반중정서가 눈에 띄게 강해졌다. 탄핵정국에서 불거진 중국인 시위개입, 중국인 복지수혜 논란, 심지어 중국 공안이 한국 경찰로 위장해 시위통제를 도왔다는 소문까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반중정서는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에 기대어 빠르게 퍼졌다.
"중국에는 그냥 쎼쎼(謝謝)하면 된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주장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긴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연상케 한다. 중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결코 그렇게 단순하거나 한가하지 않다. 서해 잠정조치수역 내 철제구조물 설치논란에 이어 중국 정부가 2018년 서울 용산의 주한미국대사관 예정지 인근 부동산을 매입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 내 중국에 대한 불신은 한층 깊어졌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관점에서 볼 때 갈수록 권위주의화하는 중국과 공존하려는 시도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도 같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아예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종언을 선언하며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 중심의 '제한된 질서'를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자유진영 국가들이 중국식 국가사회주의가 초래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그 '거대한 코뿔소' 앞에 침묵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 시도를 안이하게 바라보다 못해 오히려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공자학원을 유치한 국내 대학들, 그리고 중앙도서관에 '시진핑자료실'까지 둔 서울대학교가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설을 선뜻 폐지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자기검열의 심각함을 보여준다. 해외 주요 대학들이 공자학원을 줄줄이 폐쇄하는 이유는 그 이면에 감춰진 정치선전, 검열,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간첩법' 개정논란도 마찬가지다.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감각은 실종됐고 외부 위협에 대한 인식, 아니 중국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의 태도는 참을 수 없이 가볍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은 어떤 세계관과 전략으로 중국에 대응할 것인가다. 우리가 먼저 중국과 적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보복이 두려워 속국처럼 처신할 이유도 없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우리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국가사회주의에 입각한 '제한된 질서'를 거부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2개 '제한된 질서'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의 세계사적 과제다. 냉철한 인식과 단호한 전략이 없다면 우리는 다시금 거대한 지정학 게임에서 어떤 수를 두더라도 피할 수 없는 '체크메이트'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