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정부조직 개편, 시대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2025.06.09 02:05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

거버넌스(정부조직) 개편논의는 언제나 끝이 없다. 단순히 "어느 부처를 어떻게 바꾸자"는 식의 두루뭉술한 구상으로는 아무런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고 조직구성, 인력배치, 예산 등 복합적인 요소까지 치밀하게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정교한 개편안을 설계해도 마지막 결정은 '펜을 쥔 사람'의 손에 달렸다. 좋은 안을 만들어도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채택하느냐는 설득과 설계보다 힘과 위치, 그리고 꾸준함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거버넌스 논의가 허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결정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에 근접하기 위해, 우리는 최상의 안을 설계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토론하고 설득해야 한다.

거버넌스 논의는 보통 '조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시작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바꿔야 하는가'다. 정권 초기에 조직개편 논의가 집중되는 현상은 익숙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언제나 병존한다. 그렇다면 지금, 왜 다시 거버넌스를 손봐야 하는가. 그 출발점은 시대정신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정부에 요구하는 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기존 거버넌스 체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설정한 국가적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체계가 가장 효과적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인구감소, 사회구조 변화, 기술융합 등 복합적 변화 속에서 기존 정부조직 체계가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도 피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사일로(silo)에 갇혀 고착된 행정조직을 재구조화할 시점이며 단순한 논의를 넘어 실행 가능한 방안을 시험해볼 때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갈등사안을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 위원회를 통해 조정하려 했지만 집행력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제는 실질적인 조정기능과 권한을 갖춘 조직이 필요하다. 예컨대 미국 대통령실의 OMB(관리예산실)는 성공적인 모델로 고려할 수 있고 DOGE(정부효율부)는 혁신적인 시도로 참조해볼 수 있다. 방송·통신·미디어, 개인정보, 지식재산 등 다양한 분야가 AI 시대를 맞아 빠르게 융합된다. 부처들은 각자 최선을 다하지만 이 '최선들'이 부딪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무조정실이 존재하나 첨예한 이해관계 앞에서 실질적 조정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결국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갈등조정과 방향설정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요구된다.

조직개편 과정에서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소외된 이슈들이다. 정부조직 개편이 대체로 거대한 구조변화에 집중되다 보면 기초적 통신인프라, 보안, 정보문화, 콘텐츠와 같은 전통적인 통상업무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 뒷전으로 밀려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과거에도 사회적 약자나 정보문화를 다루는 정책이 조직개편 과정에서 '자투리 업무'로 이관되면서 마이너 사안으로 전락한 경우가 있다. 선진국형 거버넌스는 메인이슈뿐 아니라 정부조직 개편에서 종속변수일 수도 있는 서브이슈까지 균형 있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조직개편은 큰 틀만이 아니라 세부 영역까지 유기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최근 필자도 정부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동시에 진정으로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한지, 우리가 제시한 해법이 과연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지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 경쟁력의 핵심인 AI, 지식재산, 데이터 등은 정부간 건강한 견제와 경쟁구조 속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며 융합적 조정기능과 독립적 권한이 조화를 이루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지금이야말로 정책적 현실과 학술적 이상을 잇는 거버넌스 논의가 절실하다. 정부조직 개편이 단기적·정무적 이해관계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성공적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체계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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