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이건희, 그 후 5년... 이제 삼성은

오동희 기자
2025.10.25 14:15

[오동희의 사견(思見)]

2025년 10월 25일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 5주기다. 사진은 생전 이 회장의 활동 모습. 사진 위에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2010년 9월 17일 와세다대 명예박사 수여식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때 △2011년 10월 14일 미국 일본 출장을 마치고 김포공항에서 △2011년 1월3일 호텔신라에서 열린 삼성그룹 2011년 시무식 참석△2011년 3월 31일 해외출국 △2011년 12월 1일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차 삼성 서초사옥 로비에서 △2011년 9월27일 미국 코닝 출장을 위한 김포공항 출국장에서/사진=머니투데이DB

그 일로부터 벌써 5년이다.

5년 전 오늘은 삼성을 글로벌 톱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향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한 날이다.

기자는 생전 이건희 회장을 취재 현장에서 수십 번 만나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졌다. 천천히 한마디씩 내뱉는 그의 말 속에는 늘 장고(長考)를 거듭한 선승(禪僧)의 화두가 담겨 있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던 이 회장이 '신들린 듯' 수백 시간을 이야기했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의 유창함은 없었지만, "항상 멀리, 깊게 보라"는 그의 말에는 집무실에서 몇날 며칠 밤을 새우며 미래를 고민했던 흔적이 배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늘 걱정하던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사장(현 회장)의 말도 떠오른다. 기자가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를 묻자 그는 "회장님(이 회장이 아버지를 부를 때의 호칭)께서는 '늘 건강을 챙기라'는 의사들의 말을 잘 안 듣는다"며 "기자님이 좀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른 이별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호의 키를 잡은 것은 부친 이병철 창업회장이 별세한 직후인 1987년 12월이다. 민주화의 격변기에 맞은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거함 삼성을 이어받은 이건희 선대회장의 고민은 깊었다.

당시는 아시아 변방의 3류 가전업체에서 벗어나 마쓰시타(현 파나소닉), 소니·샤프 같은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절실히 모색하던 시기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이 나온 것은 회장 취임으로부터 5년여 뒤인 1993년 6월이다.

이 회장은 '양보다 질'로의 대전환을 외치며 5년을 인내하고 또 인내했지만, 삼성 내부의 변화는 더뎠고, 결국 그는 전 임원을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변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며 혁신에 박차를 가했다.

이재용 회장도 선대회장으로부터 삼성의 키를 물려받은 지 이제 5년이 됐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제2의 신경영과 같은 메시지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이 회장은 선대회장과는 다른 여정을 걸어왔다. 그렇기에 선대회장이 갔던 길을 그대로 답습할 이유는 없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선대회장이 취임 후 삼성 변혁에 5년을 올곧이 쏟았다면, 이 회장의 지난 5년은 '삼성 외의 문제'로 더 험난했다.

게다가 '이건희 시대'와 '이재용 시대'의 삼성은 처한 환경 자체가 다르다.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옮겨가며, 모방자에서 창조자로의 험난한 미지의 길을 걷게 됐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의 세상이 맞물렸다.

챗GPT가 등장한 2022년 11월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1947년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시작된 실리콘(Si) 반도체 시대 이후 최대의 격변기다. 우리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그 앞에 놓인 대내외의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선 내부를 튼튼히 해야 앞날을 도모할 수 있다. 아버지 시대의 과제가 여전히 그의 과제로 남아 있다. 1993년 이건희 선대회장은 삼성에서 반드시 퇴출시켜야 할 3무(三無)로 '무책임, 무관심, 무참여'를 꼽았다. 지금의 삼성도 되새겨볼 대목이다.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라고 했다. 아버지가 호랑이였다면 아들은 그보다 더 큰 숲을 지배하는 강자가 돼야 한다. 그 숲은 기술의 숲이자 인재의 숲이며, 동시에 미래의 숲이다.

이제 이재용 회장이 다시 그 숲의 중심에서 '멀리 보고, 깊이 보는' 눈으로 삼성은 물론, K-산업을 이끌어야 한다. 그의 지난 5년이 다시 '미래 50년'을 여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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