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이 28일 개막했고, 이어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리는 이번 APEC은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다.
APEC 2025는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퀀텀 점프'의 장이자,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진입할 역사적 대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경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 미·중 양국 정상이 한국 땅에서 마주 앉는 이번 APEC 무대는 그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은 단순히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아니라 갈등을 조율하고 협력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적 허브가 될 수 있다. '중재자'가 아닌 새 질서의 설계자로 자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APEC은 1989년 출범 이래 자유무역 확대와 포용 성장을 통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해왔다. 21개 회원국은 전 세계 인구의 30%, 국내총생산(GDP)의 60%, 무역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거대한 경제권이 갈등의 시기에 천년의 역사를 품은 경주에 모인 것은 상징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의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우리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APEC의 주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 연결, 혁신, 번영'이다.
회담을 통해 무역·투자·디지털·공급망·인적 교류 등 역내 연결성을 강화해 경제 통합을 이루고,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 등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 모든 경제 주체가 기술 혁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모두가 함께 번영하자는 게 핵심이다.
APEC CEO 서밋에서는 팬데믹 이후 흔들린 공급망의 복원, AI와 디지털 전환이 만드는 새로운 산업 질서가 논의된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조선·배터리·자동차 등 제조업 4대 축의 강국으로 세계의 신뢰를 쌓아왔다. 여기에 AI·로봇·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의 기술 패권 확보가 더해진다면, 한국은 단순한 산업 강국을 넘어 기술 문명 리더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2000년의 세월을 이어온 경주의 문화는 문화강국 코리아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APEC의 최대 관심사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깜짝 회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경주는 세계 외교의 중심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외교 무대의 이면에는 결국 '경제'라는 본질이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비롯해 전 세계 1700여명의 최고경영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CEO 서밋은 AI 시대 협력의 장이 될 전망이다. 이 자리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등 내로라하는 기업인들도 참석한다.
1988년 올림픽이 산업화의 성공을, 2002년 월드컵이 정보화의 성공을 열었다면 이번 경주 APEC은 AI와 디지털 문명 시대의 'K-경제 도약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우려하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기술 혁신을 통해 놀라운 성장을 이뤄왔으며, 지금까지 해온 것을 앞으로도 계속하면 된다"고 답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에 보내는 신뢰의 목소리다. 이제 그 신뢰를 현실로 바꿀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경주의 회의장은 단순한 외교의 장이 아니라 기술과 혁신으로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는 무대다. APEC의 무대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은 원팀이 되어 기술로 평화를 만들고, 협력으로 번영을 이끄는 최선봉장이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