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窓]규제란 병목을 뚫어야 혁신성장의 길이 열린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원장
2026.03.27 02:00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성장잠재력의 둔화이다. 저출생·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술패권 경쟁 심화라는 복합적 환경 속에서 성장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생산성 향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그 핵심에는 혁신이 자리잡고 있다. 혁신은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뿐 아니라 기존 산업의 효율을 높여서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우리 기업들의 혁신활동이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업혁신조사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혁신활동률과 R&D활동률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기술이 성과로 이어지는 길목 곳곳에 병목이 놓여 있어서 혁신 의지의 확대가 곧바로 혁신 성과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혁신조사에서도 기업들은 우수 인력 부족, 기술 및 시장정보 부족, 협력 파트너의 부재, 과도한 규제, 법·제도 미비 등 여러 장애요인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가격 제한 규제나 금융시장 관련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된다고 응답한 비중이 높았고, 외부자금 조달에 제약을 느끼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제약이 중소기업에 더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의 혁신율은 중견기업과 대기업에 비해 낮게 나타났고, 상품혁신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 모두에서 같은 경향이 확인되었다. 혁신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로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은 기업 규모에 따라 크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혁신이 경제 전체의 성장엔진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혁신 역량이 일부에 편중되면서 경쟁력 격차를 확대할 위험까지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혁신은 단일 사건이 아니라 연속된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혁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고, 연구개발에 성공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실증을 거쳐 사업화로 이어지고, 시장에 진입해 실제 수요와 만나야 비로소 혁신은 경제적 성과로 전환된다. 그런데 이 과정 중 한 군데라도 막히면 앞선 단계의 투자와 노력은 쉽게 매몰된다. 기술은 있는데 자금이 부족해 멈추고, 자금은 있는데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멈추고, 제품은 나왔는데 초기 수요가 없어 멈춘다. 혁신의 속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단편적 처방이 아니라 총체적 접근이다. 지금까지는 R&D 지원은 R&D대로, 금융지원은 금융대로, 규제개선은 규제대로 분절적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혁신을 가로막는 현실의 병목은 그렇게 분절되어 있지 않다. 자금 문제는 규제 문제와 연결되고, 규제 문제는 시장 진입 문제와 이어지며, 시장 진입 문제는 다시 수요 창출과 맞물린다. 따라서 정책은 혁신의 각 단계를 따로 떼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의 전 과정을 하나의 사슬로 보고, 병목이 생기는 지점을 종합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혁신이 도중에 꺾이지 않도록 길을 연결하는 일이다.

지금 한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혁신이 실제 경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슬의 약한 고리를 보강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이다. 혁신은 어느 한 천재 기업가나 획기적인 기술·산업의 돌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력, 정보, 금융, 규제, 시장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향상된다. 성장둔화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양을 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이제는 혁신의 전 과정을 잇는 총체적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국경제는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임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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