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권 아파트 시장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며 기세를 올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수요자들의 매수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가격도 맥을 못 추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주 대비 평균 0.1% 상승했지만, 강남 3구는 7주째 약세다. 이러한 기류는 강남권 대장주들이 포진한 'KB선도아파트 50지수'에서 더욱 선명하게 읽힌다. 지난 3월 이 지수는 전월 대비 -0.73% 하락하며 2년 1개월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책이 나오면 외곽부터 흔들리고 강남 같은 중심부는 꿈쩍도 하지 않던 과거의 양상과는 확실히 딴판이다.
시장이 이토록 냉정해진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보유세와 양도세 부담을 느낀 고령 자산가들이 이른바 캐시 푸어(Cash poor)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선제적 매도에 나섰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강남의 약세를 다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자산의 실제 사용 가치를 의미하는 전세가격과 자본 이득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매매가격 사이의 심한 불균형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3월 강남구 아파트의 전세가 비율은 37.7%로 1년 전(41.4%)보다 크게 낮아졌다. 송파구(38.9%)와 용산구(38.8%) 역시 30%대까지 밀려났다. 전세가 비율은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상대적 수치다. 그사이 전세가 비율이 급락한 것은 전세가격 상승폭보다 매매가격이 훨씬 더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과거 재건축 대상이 많았을 때는 전세가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전세가격은 건물값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권과 용산에 대거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는데도 전세가 비율이 급락한 것은 매매가격이 그만큼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강남권과 한강벨트 아파트가 지닌 주거 프리미엄은 분명한 실체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한 입지라도 단기간 급등 뒤에는 내재 가치를 압도하는 강력한 '서사(Narrative)'가 투영되어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경제적 사건의 배후에 항상 '전염력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강남이나 한강 벨트는 단순한 지리적 위치를 넘어 가격 우상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러한 서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되먹임(Feedback)되며 스스로 덩치를 키운다.
커뮤니티 공간에서 형성된 '지금이 상급지 갈아타기 마지막 기회'라는 자극적인 서사는 알고리즘을 타고 반복 노출된다. 이러다 보면 어느 순간 비판적 검증이 불가능한 '시장 일반론'으로 고착된다. 확증 편향에 갇힌 대중은 집단적 확신에 경도되고, 이러한 서사는 비이성적인 과열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한다. 내집 마련 수요자는 자산의 본질적 가치를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이 만든 집단적 환상을 매수하는 게 아닌지 항상 되짚어봐야 한다.
물론 강남 아파트 가격에 거품이 형성됐다고 하더라도 풍선 터지듯 순식간에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품의 해소는 급격한 폭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해소되는 양상을 띠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개구리 눈 버블(Frog-eye bubble)'이나 '맥주 거품(Beer foam)'으로 비유한다. 최근의 조정 양상은 서사가 현실을 너무 멀리 앞질러가면서 생긴 간극 메우기 과정으로 보인다.
부동산 시장은 펀더멘털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이야기가 가격을 견인한다. 하지만 서사에 취해 기초 체력을 망각하는 순간 위기는 시작된다. 집단적 확신에 동조하며 화려한 파도에 올라탈 때가 아니라 서사가 가린 차가운 지표들을 되짚어보는 게 좋다. 무엇보다 SNS가 퍼뜨리는 서사에 매몰되지 않는 안목과 경계심이야말로 시장의 광풍 속에서 자산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