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명단에도 없더니… 형이 낫다" 인신공격 파장
교황 "사명 계속" 응수… 종교계 "다시 봤다" 찬사
"미국에 큰 영광." 지난해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탄생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환영의 메시지다. 하지만 즉위한 지 약 1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정반대다. 전세계 가톨릭신도의 정신적 리더가 트럼프행정부의 외교기조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감정을 섞어 맞받아치면서 파장이 이어진다.
◇트럼프는 비아냥, 교황 "사명 다할 것"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특별기도회에서 "자기 자신과 돈에 대한 우상숭배는 이제 그만, 권력과시도 이제 그만"이라며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하고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전능에 대한 망상"에 맞서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 하루 전엔 X를 통해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며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과거에 칼을 들었고 오늘날엔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문명 전체를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했을 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2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레오는 교황으로서 정신을 차리고 상식을 발휘하며 급진좌파에게 영합하는 걸 멈추고 정치인이 아닌 위대한 교황이 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방치하고 마약과 범죄자를 수출하는 베네수엘라를 공격한 걸 비판하는 교황을 원치 않는다"고도 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레오는 교황 후보 명단에도 없던 깜짝 놀랄 존재였다"며 "내가 백악관에 없었다면 레오도 바티칸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형 루이 프리보스트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라면서 "레오보다 (MAGA 지지자) 루이가 훨씬 좋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자 13일 교황은 알제리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논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나는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라고 믿는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레오 14세는 자신의 발언이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반이민·전쟁갈등 누적…관찰자에서 비판자로
미국 정가와 종교계에선 "레오 14세를 다시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즉위 초만 해도 레오 14세는 과묵하고 신중한 인물로 보였다. 진보적이면서 즉흥적 발언도 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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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오 14세는 이란전쟁을 둘러싸고 어느 때보다 더 빈번하고 강하게 트럼프행정부를 비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공습을 시작한 다음날인 3월1일 레오 14세는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주일 삼종기도 후 연설에서 "깊은 우려"를 표하며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이 이번 전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이라고 묘사했을 때 교황은 "일부는 이런 죽음의 선택을 정당화하면서 신의 이름까지 끌어다 쓴다"고 일축했다.
올 1월 레오 14세는 외교관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국가가 무력을 사용해 타국의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금지해온 규범이 완전히 훼손됐다"며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작전을 지적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는데 이에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 정책차관은 미국 주재 바티칸대사를 펜타곤으로 불러 "가톨릭교회는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시 미국 측 인사가 14세기 교황이 프랑스 왕권에 종속됐던 '아비뇽 유수'를 언급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협박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트럼프행정부가 레오 14세의 비판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가톨릭 세계의 수장인 데다 미국인이어서다. 미국인의 정서와 정치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황이 오죽하면 목소리를 내겠느냐는 평가는 가톨릭 표심을 움직여 트럼프행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백인 가톨릭계의 트럼프 지지율은 하락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