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베이징 넘어 지방으로 넓혀야[MT시평/윤종석]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2026.06.29 02:00

최근 광둥성 주하이에서 열린 한국-광둥 협력 자문회의에 참석했다. 오랫동안 광둥과 웨강아오 대만구를 연구해온 필자에게는 협력 가능성을 확인하고 중국의 지방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결할지 되새기는 자리였다. 우리는 중국을 흔히 베이징과 중앙정부를 통해 바라본다. 그러나 중국에서 지방은 결코 변방이 아니다. 웨강아오 대만구는 인구 8800만 명이 넘고 경제총량은 15조 위안을 웃돈다. 산업정책과 투자, 기술혁신, 인적교류가 작동하는 현장도 지방이다. 중앙정부 간 대화만으로는 중국이 움직이는 현장을 놓치기 쉽다.

한중 지방교류의 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양국 지방정부의 자매·우호관계는 700여 건에 달하며, 한국 지방정부의 국제교류에서 국가별 비중이 가장 크다. 그러나 700여 건의 관계를 쌓고도 중국의 어느 지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매번 다시 묻는다면 그것을 교류의 축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문제는 접촉의 부족보다 경험이 조직과 사회의 기억으로 남지 않는 데 있다.

필요한 것은 지방정부 간 교류의 확대만이 아니다. 중국의 각 지역을 서로 다른 산업과 정책, 인재와 시장이 결합된 협력의 현장으로 읽고, 한국 사회의 다양한 주체가 여러 층위에서 연결돼야 한다. 중국 지방들은 중앙의 정책 틀 안에서도 기업과 기술, 인재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각 지역의 산업전략과 수요를 세밀하게 읽을 때 협력은 구호를 넘어 상호 이익의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성이나 대만구 같은 초광역 경제권과 한국의 단일 지자체가 일대일로 협력하기에는 체급 차이가 있다. 때로는 국가 차원에서 역량을 모으고, 때로는 여러 지역과 기관이 분야별 협력체를 꾸려야 한다.

사안에 따라 중앙정부는 제도적 틀을 만들고, 지방정부는 지역 간 연결을 설계하며, 기업과 대학은 공동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청년과 시민의 상호 방문과 현장학습, 창업팀과 연구자의 교류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만남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와 시행착오가 개인의 이력으로 흩어지지 않고 다음 사람과 다음 사업으로 이전되는 구조다.

이 연결을 움직일 핵심 자산은 사람이다. 중국 지방 곳곳에는 한중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사업했던 이들이 있다. 한국에도 중국의 여러 현장을 생활과 업무로 경험한 인재가 적지 않다. 이들을 '친한파'로 분류해 행사 때마다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산업별로 연결해 현지 수요를 읽고 제도와 시장의 차이를 번역하며 공동사업을 설계하는 '경험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 좋은 기억뿐 아니라 실패와 충돌, 오해의 경험까지 다음 협력의 판단 자료로 남겨야 한다.

물론 중국 지방도 중앙의 대외정책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방을 국가 갈등의 우회로로 보는 낭만론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을 베이징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은 중앙외교를 가볍게 여기는 일이 아니라 중국을 더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이제 한중교류의 성과는 몇 번 만나고 몇 건의 협약을 맺었는지가 아니라, 그 경험이 다음 사람과 다음 협력에 얼마나 남았는지로 가늠해야 한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