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오스틴 테슬라길 1번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본사 주소다. 5년 전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 오스틴으로 갔다. 오스틴은 테슬라뿐 아니라 삼성전자, AMD, 델, 애플을 만나는 도시다. 흔히 실리콘밸리에 빗대 '실리콘힐스(Silicon Hills)'라 불린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오스틴은 오늘의 위상과 거리가 멀었다. 중견 행정·대학도시였다. 지금의 AI(인공지능)·반도체 기업도시로 거듭난 스토리의 첫 단추는 실리콘, 즉 반도체였다. 당시 미국은 일본의 D램 공세에 충격을 받았다. '반도체가 더 밀리면, 컴퓨터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MCC(마이크로전자·컴퓨터기술) 연구개발(R&D) 컨소시엄이 만들어졌다. 미래 반도체 도시로 갈 황금 티켓 'MCC 본부 유치전'에 57개 도시가 뛰어들었고, 최종 승자는 오스틴이었다.
비결은 주정부-상공회의소-텍사스대-지역사회의 팀플레이로 요약된다. '스타트업 실험실'을 표방하며 저가 임대, 저리 대출, 주택 금융 등 파격적인 지원 패키지를 내세웠다. 컴퓨터, 전기공학 중심으로 지역 대학에 20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치되면서 인재육성 채널도 강화됐다. MCC라는 R&D 공동 인프라는 델, 삼성전자, 테슬라 같은 기업이 뒤따르는 토양이 됐다. 성과를 목도한 주정부는 더 과감한 지원책을 덧붙였고, 2023년에는 텍사스 반도체법까지 통과시켰다. 숫자도 말해준다. 최근 20여년(2002~2023년)간 미국 대도시들의 실질GDP(국내총생산)가 59% 늘 때, 오스틴은 210% 증가했다. 오스틴의 1인당 생산력과 인구가 늘며 새로운 반도체 거점이 됐다.
최근 우리도 '메가 프로젝트'를 통한 국토공간 대전환을 앞두고 있다. 수도권 밖에 AI 중심의 새로운 거점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AI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팹을 중심으로 스타트업과 사람이 몰리고, 다시 기업이 몰리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관건은 기업환경이다. 기업은 호남이냐, 영남이냐만 보지 않는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텍사스도 한 화면에 놓고 비교한다. '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규제로 막힌 데이터를 이곳에서는 활용할 수 있고, 어떤 곳에선 의료·바이오 등 규제 업종에 대한 실험도 가능해야 한다. 또 인프라 기업에는 전력과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솔루션 기업에는 저렴한 토큰과 공공 일거리를 줘야 한다. 투자 보조금이나 세제 인센티브를 통한 ROI(투자수익률)를 높여줘야 한다. 구성원의 정주여건 개선도 필요하다. 자녀가 다닐 학교, 비상시 갈 상급병원, 배우자가 일할 직장, 퇴근 후 숨 쉴 문화공간도 있어야 한다. 정주여건은 복지가 아닌 산업 인프라인 셈이다.
우리는 하반기 메가특구의 첫 개장을 앞두고 있다. 메가 프로젝트는 반도체 팹 몇 동, 데이터센터 몇 기를 세우는 사업이 아니다. 그 인프라를 그릇 삼아 AI 스타트업이 자라고, 국내외 인재가 모이고, 기업이 다시 기업을 부르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오스틴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듯 'K-지방의 기적'을 설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