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행정학, 광고학, 컴퓨터정보공학. 모두 지난해 중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폐지된 학부 전공이다. 중국 정부가 인공지능(AI), 피지컬 AI, 반도체에 올인하면서 중국 대학이 급변하고 있다.
중국 대학의 학부 전공은 수시로 폐지되거나 신설된다. 지난 14차 5개년 계획 기간(2021~2025년) 중국 대학에서 신설된 학부 전공은 1만200개, 폐지되거나 신입생 모집이 중단된 전공은 1만2200개에 달했다. 중국 전체 6만개 학부 전공 중 30% 이상이 신설되거나 폐지된 것이다.
지난 4월 중국 교육부가 발표한 '정규 고등교육기관 학부전공 목록(2026)'에서는 38개 학부 전공을 신설했다. 체화지능(피지컬AI),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저고도 경제, 농업용 로봇, 디지털 문화·관광 등 다양한 첨단 분야를 망라한다. 신설된 38개 학부 전공 중 공학 비중이 31.6%로 압도적인 1위다. 올해 저장대학, 상하이교통대학 등 9개 대학이 체화지능 전공을 신설하며 로봇 산업 육성에 나섰다.
대신 AI 번역과 문서 생성기술로 인해 필요성이 감소한 영어영문학과, 한국어학과 등 외국어 전공은 줄줄이 폐지되거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있다. 이는 중국 대학의 전공이 단순히 학술 분류에 따라 짜여지기보다 중국의 국가 전략과 산업 고도화를 위한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고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중국 대학은 대부분이 공립대학으로 중국 교육부의 재정 지원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책이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1998년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이 세계 일류대학 건설을 선언하며 시작된 '985공정'에 포함된 39개 대학, 21세기 100여개 일류 대학 육성을 위해 시작한 '211공정'의 119개 대학이 모두 공립대학이다. 상위 100여개 대학이 전부 공립대학인 것이다.
졸업 후 고소득을 올리는 중국 대학 전공을 보면 중국 경제의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10년간 고소득 전공은 컴퓨터공학과 독주에서 점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융합 및 하드테크(hard tech) 분야로 진화했다. 하드테크는 반도체, 첨단제조, 로보틱스처럼 물리적인 기술과 첨단 소재, 과학적 혁신에 기반을 둔 기술을 뜻한다.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이 알리바바(전자상거래), 텐센트(게임·인터넷)에서 캠브리콘(AI칩), CATL(이차전지), 유니트리(휴머노이드로봇)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립에 사활을 걸면서 반도체 관련 전공이 인기를 누린다. 중국 고등교육 컨설팅업체 마이코스연구원이 발표한 '2026년 중국대학생취업보고서'에 따르면 졸업 6개월 후 가장 월수입이 높은 전공은 마이크로전자공학과다. 평균 월급이 7814위안(약 174만원)에 달했다. 전자과학 및 기술이 7752위안(172만원)으로 뒤를 이었고 자동화가 7573위안(168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다.
4~5위는 정보보안, 광전정보과학이다. 상위 5위 전공 중 3개가 반도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걸 보면 중국에서도 반도체가 가장 '핫'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인공지능, 대형언어모델(LLM) 투자와 데이터센터 건설이 가속화되면서 반도체 설계, 반도체 제조, 광전자 소자 연구개발 분야의 인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로봇 등 첨단제조업 관련 전공의 굴기도 눈에 띈다. 자동화(3위), 기계공학과(7위), 제어계측공학과(8위) 등 3개 전공이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최근 중국 제조업이 스마트제조, 고부가가치로 방향을 틀면서 산업용 로봇, 지능형 장비, 첨단 계측장비 등의 업종이 빠르게 발전해 자동제어·정밀계측 분야의 인재 수요가 늘었다.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동안 월소득 상위 10대 전공에서 빠지지 않았던 컴퓨터공학과, 소프트웨어공학과가 탈락한 사실이다. 마이코스연구원은 지난 10년간 인터넷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컴퓨터 관련 전공자의 급여 수준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인터넷 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급여 경쟁력이 과거만큼 두드러지지 않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 인재 수요에는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다. AI가 획일화된 업무를 대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지만, 인공지능·저고도 경제 등 중국 정부가 적극 육성 중인 핵심 전략 분야는 오히려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디지털경제 인재발전보고서(2025)'에 따르면 디지털 경제 관련 인재만 3000만명이 부족하다.
게다가 중국이 올해부터 야심차게 추진하는 제15차 5개년 계획은 미래 산업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하며 △양자 기술 △바이오 △수소 에너지 및 핵융합 에너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체화지능 △6세대 이동통신을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와 미래 산업으로 대표되는 이들 신성장 산업은 수천만 명 규모의 인재를 필요로 한다.
당장 인공지능은 500만명, 실버산업·헬스케어도 500만명, 스마트제조는 450만명,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는 400만명의 인재가 필요하다. 네트워크 보안(327만명), 저고도 경제(100만명), 녹색경제(100만명), 반도체(30만명)도 인재 부족이 심각하다.
중국은 학부 전공을 미래 인재 공급망과 연계시켜서 첨단제조업, AI, 반도체 등 핵심 전략 산업에 필요한 전공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 대학 시스템이 공립 대학 중심이라서 가능한 일로 산업정책과 교육정책이 고도로 연계돼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대학시스템이 사립대학 중심으로 형성돼 중국과는 다른 상황이다. 특히 학과폐지나 통폐합은 교수정원, 입시구조 등과 맞물려 있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그러나 갈수록 심화되는 청년 실업과 채용 현장의 전공 미스매치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미래 인재 수요에 부합하는 전공 개편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