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국토교통부 장관의 정비구역 직권 지정과 해제 관련 법안이 논란이다. 새로 발의된 법안의 골자는 특별시장이나 광역시장 등 지자체장에게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집중돼 '병목 현상'이 발생하니 필요시 중앙정부가 직접 지정할 수 있게 하고, 지방도시계획위원회가 아닌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본래 정비사업은 노후 주거지나 시가지를 정비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도시관리계획의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지자체가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지방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비구역을 지정한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직권 지정은 표면적으로는 주택공급을 위해 병목을 없애고 물꼬를 트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정작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이 법안이 정비사업을 빠르게 하는 해법인지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서울시를 보면 정비사업 지연 원인이 구역 지정 단계에 멈췄기 때문이 아니다. 최근 3년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는 평균 69일, 통합심의는 평균 31일 이내에 상정 안건이 대부분 처리됐다. 이는 필수 절차상의 최소 기간이다. 가결률도 90%에서 97%에 이른다. 정비사업 평균 기간이 약 18.5년,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서울시의 심의 기간은 약 3.3개월로 전체 사업 기간의 1.5%에 불과하다.
특히나 서울시에서 신속통합기획 제도를 도입한 후, 정비구역 지정에 걸리는 총기간은 과거 5년에서 2년으로 단축됐다. 사업 지연은 정비구역 지정 단계가 아닌 그 이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다. 정비구역 지정 이후 준공까지 평균 10년 이상이 걸린다.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인가 등 자치구 인허가 과정, 주민 간 이해관계 충돌, 사업성 문제, 다양한 사업방식 시도, 공사비 상승과 분담금 갈등, 정책 환경 변화 등이 사업 지연 요인이 너무나 많다. 중앙정부가 정비구역 심의를 가져간다 해서 사업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진정으로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정비구역 지정 이후 단계에 집중해야 한다. 정비사업은 단순한 주택공급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비구역은 한 단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변 도로, 공원, 학교 등 기반시설, 경관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도시의 한 조직이다. 민간은 사업성을 위해 높은 밀도와 높이를 요구하고, 공공은 경관 훼손과 교통 체증 등 주변에 미치는 기반시설 영향 그리고 공공주택 확보를 따진다. 이런 사업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섬세한 조정은 주민과 지역을 이해하고 있는 지자체의 몫이다.
중앙정부의 정비구역 지정은 독자적인 정비계획을 운영 중인 지자체의 지방자치권을 침해할 수 있고, 사회적·행정적 비용을 상승시킬 우려도 있다. 사업 관계자들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받기 위해 더 잦은 이동을 해야 하고, 현장과 소통 거리는 멀어진다. 정비구역 지정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추가적인 협의 절차도 필요하고, 지자체 내에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중앙-지방 간 소모적인 기싸움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오히려 직권 지정 자체가 역효과 될 수 있는 셈이다.
도시 정비는 단순한 주택공급을 넘어 도시의 삶터를 재구축하는 과정이다. 정비사업의 병목은 구역 지정 단계가 아닌 이후 사업 시행과 추진 과정에 원인이 있다. 구역 지정의 권한 이원화로 생긴 혼선과 비효율 때문이 아니다. 제도 개선의 초점은 실질적인 갈등 관리와 후속 절차 개선, 공사비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요인 관리에 맞춰야 한다. 잘못된 처방으로 생긴 피해는 결국 시민에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