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학생들의 부정행위가 잇따르면서 교육부가 대학 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대학 AI 활용 윤리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정부 차원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각 대학이 이 자료를 토대로 자체 지침을 수립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은 27일 오후 2시 서울역 삼경교육센터에서 '대학 AI 활용 윤리 지침(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이번 간담회는 대학별 여건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설계할 수 있도록 공통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재까지 마련된 초안은 5대 핵심원칙과 12개 세부원칙으로 구성된다. 5대 핵심원칙은 △학문적 진실성 △인간 중심성과 책임성 △투명성과 신뢰성 △공정성 △정보 보호 및 보안이다. AI를 학습 과정에서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되, 기본적인 학문 윤리와 공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이드라인은 교수와 학생 모두를 적용 대상으로 한다. 교수에게는 학생들이 AI를 어디까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강의계획서에 명확히 안내하도록 권고한다. 단순히 사용을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수준을 넘어, 올바른 활용 방법을 교육하라는 취지다.
동시에 교수 본인의 AI 활용 원칙도 포함됐다. 학생들이 AI 활용에 의존하지 않도록 수업에서 AI의 답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심층적 질문을 제시하고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분석을 요구하는 과제를 설계하도록 안내했다.
특히 교수용 지침에는 'AI 탐지 도구'를 비판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AI 탐지 도구는 학생이 제출한 과제나 보고서·논문이 AI로 작성됐는지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이드라인은 해당 도구의 결과를 맹신해서는 안 되며, 도구로 탐지되지 않았더라도 교수의 전문적 판단을 통해 AI 활용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연구 책임자인 김자미 고려대 교수는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과제를 제출했을 때 학생 스스로 고민해서 작성한 건지 AI 생성물인지 판단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그럼에도 해당 과제가 AI 생성물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는 교수가 있다면 대학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교수도 학생들이나 AI 탐지 도구를 전적으로 믿지 않고 수준 높은 과제를 낼 역량과 AI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생용 지침에는 AI 활용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과제 수행 과정에서 AI를 사용할 경우 인용과 출처를 명확히 밝히도록 하고 부적절한 사용은 부정행위로 간주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안내했다.
이번 초안은 이미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국내 주요 대학 사례를 참고해 마련됐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은 자체 지침을 운영 중이지만 적용 범위와 세부 내용은 대학마다 차이가 있다. 서울대는 교수와 학생에게 공통적으로 활용 원칙을 제시하고 교수의 과제·시험 운영 지침을 별도로 안내하고 있다. 연세대는 학생을 대상으로 사실 검증, 저작권,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세부 기준을 알려주고 교수에게도 평가와 인용 방식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교육부가 지침 마련에 나선 배경에는 AI 활용을 둘러싼 대학 내 공정성 논란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연세대 신촌캠퍼스 교양 강의 '자연어 처리(NLP)와 챗GPT'에서 중간고사 부정행위가 다수 적발됐다는 공지가 나오면서 AI를 활용한 시험 부정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상당수 학생들은 부정행위 과정에서 AI를 몰래 쓴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제시된 의견을 반영해 가이드라인을 보완한 뒤 오는 5월쯤 각 대학에 배포할 예정이다. 대학들은 이 자료를 토대로 자체 규정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특히 인력과 자원이 부족해 독자적인 지침을 만들기 어려운 소규모 대학에 실질적인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교협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내 140개 대학 가운데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수립·운영 중인 곳은 56개교(40%)다. 도입을 검토 중인 대학도 56개교이며, 아직 계획이 없는 곳은 28개교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연구 역량이 높은 대학을 중심으로 선제 도입이 이뤄지는 경향을 보였다.
김 교수는 "교수를 위한 가이드라인에는 구체적인 팁을 제시해 막연한 원칙 제시에 그치지 않도록 했다"며 "학생을 위한 지침에도 AI 활용 시 표기 방법 등을 담았고 부록에는 수업 운영 관점에서 참고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대학이 필요에 따라 다른 대학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