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회담은 열리지 않는다고 청와대가 25일 밝혔다.
정부는 ‘다자회의 계기에 반드시 주최국 정상과 참가국 정상의 회담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한일 정상회담 무산은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 등 최악인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항상 준비가 돼 있지만 일본은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없다"며 "우리는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는데, 그쪽(일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회담 성사를 위해 청와대와 외교부 등 각급 채널을 동원해 일본과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회의에선 외교부가 이날 오전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한 직후 청와대가 ‘회담이 열리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외교부 패싱' 지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외교부가 상대국 외교당국을 통해 듣는 것과, 청와대 측이 갖고 있는 선을 통해 듣는 것을 긴밀히 공유하고 있지만 시차가 있다”고 해명했다.
◇강경화 “외교참사 아니다”=강 장관은 일부 의원들이 한일 정상회담 불발을 ‘외교참사’라고 지적한데 대해 “참사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며 “G20 계기에 주최국과 꼭 정상회담을 한 것은 아니다. 반쯤은 하고 반쯤은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G20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려 양국간 많은 현안이 논의되면 좋겠지만 주최하는 일본 측에서도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상회담 희망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고 성사 여부는 일본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일본 참의원 선거(7월21일) 이후 한일 정상회담을 다시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선거'라는 국내 정치 변수가 있는 한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가 얽혀있는 한국과 정상회담을 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G20 정상회의 때 약식으로 한일 정상이 조우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G20 정상회의) 현장에서 만약에 일본 측이 '준비가 됐으니 만나자'고 요청을 한다면, 언제든지 아베 총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日보복조치 나서면 가만있지 않을 것"=한일 정상회담 무산으로 양국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대응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양측의 출구 없는 갈등이 깊어질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9일 강제징용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일본에 제시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즉각 거부했고, 국내적으로는 피해자와 기업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안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강 장관은 “여러 비판도 있고 흡족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일 청구권협정을 파기하는 안이 아니고 우리 최고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런 입장을 마련했다”며 “일본 측도 이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에 압류된 피고 기업들의 자산이 실제 매각되는 등 자국 기업들이 손실을 보게 되면 한국 기업들에 대한 관세인상 등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은 일본이 보복조치에 나설 경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강 장관은 “과거사 문제에 다른 양자현안을 연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일본 측에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