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정책 콘트롤타워인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연일 '도발적 격문'으로 '정책 애드벌룬(Trial balloon)'을 띄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구상과 아젠다(의제)를 '보론'(더하는 말)의 형태로 풀어 내 국민 여론을 수렴하려는 시도로 읽히지만 정치권과 시장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메시지 관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비판이 야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청와대는 12일 파장이 확산된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에 대해 "내부 논의나 검토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했다.
◇김용범 "국민배당금" 언급하자 李대통령 '기본소득론' 소환
김 실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AI(인공지능)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며 과실의 일부를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하는 '국민배당금'(가칭) 설계 검토를 제안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AI발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유례없는 이익이 특정기업만의 성과가 아닌 만큼 초과세수의 사회적 재분배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실장의 이런 제안은 '기본소득' 개념을 누차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의 고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최고경영자)와 만나 "20여년 전부터 기본소득을 얘기했는데 AI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AI 기본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선 막대한 생산성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해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아젠다' 던지는 靑정책실장…李대통령, 공개발언으로 측면 지원
김 실장은 지난 10일엔 페이스북에 "2027년까지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면 2026년과 2027년의 세수는 역사적 규모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며 "이제 진짜 중요한 대목은 재정"이라고 썼다. 초과세수를 활용한 확장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국민경제 대도약의 발판을 닦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올해 하반기와 내년 적극 재정 기조의 '울트라 예산' 편성을 지시했다.
지난 3일 이 대통령이 가진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쓴 김 실장의 '금융 구조 시리즈 3편'도 마찬가지다. 김 실장은 과거 관행에 얽매인 낡은 신용평가 체계로 중·저신용자가 과도한 고금리를 부담하거나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되는 현행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잔인한 금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와 SNS 메시지 등을 통해 금융권의 사회적 공공성 책임을 강조하고 서민 빚 부담을 줄이는 '포용적 금융 대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김용범 '정책 애드벌룬' 역할 주목…"대통령 유연함 배가" vs "무조건적 반대·편들기 부추긴다"
전문가들은 김 실장의 '도발적 격문'에는 이른바 '정책 애드벌룬' 역할로 국정 최고 책임자인 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논쟁적인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한편, 핵심 화두를 선제적으로 던지고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 겸 정치평론가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참모들이 아젠다를 던지면 대통령이 수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진영 논리가 강한 한국의 정치 환경에서 청와대가 과도하게 이슈를 생산하면 합리적 토론보다 찬반 논쟁이 넘칠 수 있다"며 "(파장을 고려한) 신중함이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AI(인공지능) 시대의 국민배당금을 거론한 배경에는 초과 세수가 있다.
반도체 산업 호황과 맞물려 올해에 예년 수준을 훌쩍 웃도는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국민배당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결국 그동안 논쟁적이었던 초과 세수 활용법을 두고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현재까지 예상되는 올해 초과 세수는 25조2000억원이다. 기획예산처는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초과 세수 규모를 세입예산에 반영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초과 세수는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초과 세수를 이끄는 세목은 법인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이 많이 늘어나면서 법인세도 정부 예상보다 많이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부터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은 법인세 중간예납 때 가결산을 의무화함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올해 상반기 호실적이 그대로 초과 세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8월 법인세 중간예납 때 직전 사업연도 산출세액을 기준으로 납부하는 방식과 상반기 실적을 가결산해 납부하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가결산을 의무화했다.
초과 세수 등 세수 오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국가 예산이 '전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9월 이듬해 세입과 세출 예산을 국회에 제출한다. 세입 예산의 경우 이듬해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전망치를 담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경기 호황이나 부진이 발생하면 정부의 예측보다 세금이 더 걷히거나 덜 걷힐 수 있다. 이 경우를 각각 초과 세수, 세수 결손이라고 부른다.
2021년(61조4000억원)과 2022년(52조5000억원)에는 본예산과 비교할 때 대규모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 하지만 2023년(-56조4000억원), 2024년(-30조8000억원), 2025년(-8조5000억원)에는 3년 연속 세수 결손에 시달렸다.
초과 세수 활용처는 법에서 정하고 있다.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세계잉여금이 늘어나게 되는데, 국가재정법은 세계잉여금을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국채 상환, 공적자금 상환 등에 활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실제 초과 세수 활용을 두고선 논쟁이 반복됐다. 초과 세수는 추경 재원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추경에서도 25조2000억원의 초과 세수 중 1조원만 국채 상환에 활용됐고, 나머진 다양한 사업 예산으로 편성됐다.
초과 세수가 발생할 때마다 내국세의 19.24%와 20.79%로 자동 배정되는 지방교부세, 교육교부금도 논란이었다. 초과 세수의 40%가 상대적으로 경직적인 지방 예산에 배정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줄곧 이어졌다.
이처럼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은 그동안 논쟁적이었던 초과 세수 활용처와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업황이 좋고 주식시장 활성화되면서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지만 현재로선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등 보수 야권이 반도체·AI(인공지능) 산업 초호황으로 발생할 초과세수의 일부를 국민에게 환원하자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이른바 '국민배당금' 구상에 대해 "사회주의식 기업이익 배급제" "반기업 정책"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AI 시대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원론적 문제의식"이라고 반박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경북도당 필승결의대회에서 "지방선거 끝나면 세금 폭탄이 터질 것"이라며 "오늘 삼성노조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 김용범 정책실장이 국민배당금이라고 얘기했다. 기업이 번 돈을 정부가 뺏어다가 나눠주는 거 공산당이나 하는 일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누가 투자하겠나. 누가 돈 벌겠나. 기업이 숨 쉬게 해야 투자하고 일자리 만들지 않겠나"라며 "그 돈 뺏어다가 나눠주겠다는 게 이재명 정부의 민낯"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SNS(소셜미디어)에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도입 제안에 대해 "청와대가 사회주의로 가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초호황이지만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다"며 "영업이익을 노조에 주고, 전 국민에게 나눠주면 기업은 무슨 돈으로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같은 날 SNS에 "2022년 초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호황에 이재명 정부가 기여한 것은 없다"며 "기업이 구성원에게 성과를 나누고, 주주에게 배당하고, 국가가 법률로 정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것, 그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정부가 강제하려는 시도, 이것이 바로 반기업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김 실장은 이날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AI 산업의 초과이윤과 관련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돼야 한다"며 이른바 '국민배당금' 구상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김 실장의 발언이 AI 시대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원론적 차원의 문제의식이라는 입장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머니투데이 the300(더300)과의 통화에서 "기업 실적 호조로 거둬들인 법인세 등 국가의 세수를 국민을 위해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기본 원칙"이라며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하겠다는 취지를 '사회주의'로 규정하는 야당의 비판은 근거 없는 색깔론이자 낡은 이념 정치"라고 밝혔다.
이어 "김 실장의 발언은 구체적인 정책 설계가 끝났거나 당장 추경 편성해 현금을 지원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다가올 AI 및 로봇 시대에 대비해 국민적 혜택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론적 차원의 메시지"라며 "향후 구체적인 초과 세수 활용 방안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했다.
국회 재경위 소속 안도걸 민주당 의원도 SNS를 통해 김 실장을 엄호했다. 안 의원은 "김 실장의 발언 취지는 AI·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으로 대규모 법인세 초과세수가 발생할 경우 그 재원을 아무 원칙 없이 단기적으로 소진하지 말고 국가 차원의 전략적·체계적 활용 원칙을 미리 설계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가올 AI·반도체 슈퍼사이클 속에서 초과세수가 실제 얼마나 발생할지, 그 규모가 일시적 경기 요인인지 구조적 변화인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그 재원을 어디에 투자해야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차분하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