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일본 반도체 산업은 세계를 지배했다. 도시바·NEC·히타치가 '반도체 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를 읽지 못했다. 투자보다 수익에 집중했다. 주도권이 한국 등으로 넘어갔다. 미래 투자 여부에서 승패가 판가름났다.
반도체 전쟁이 다시 불붙는다.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만 6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미국도 70조원 규모 반도체 보조금을 집행 중이다. 중국은 국가 총력전이다. 기업 경쟁을 넘어 국가간 경쟁이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예고했다. 연간 영업이익의 15%, 최대 45조원 규모 성과급을 요구한다. 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0%가 파업이 부적절하다고 했다. 45조원은 삼성전자의 지난해 R&D(연구개발) 비용 37조7000억원보다 많고, 정기 배당금 9조8000억원의 4배가 넘는다.
삼성전자는 HBM4, AI(인공지능) 메모리, 첨단 패키징에 대규모 투자 중이다.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다. 지금 반도체 산업은 축배를 들 시기가 아니다. 생존을 걸고 뛰어야 할 시기다.
물론 노동의 몫을 가볍게 볼 수도 없다. AI 시대 인재 확보는 기업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보상의 규모보다 구조다. 일회성 배분이 아닌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스템은 균형감각 위에 설계돼야 한다. 반도체는 세금 제도, 전력망, 용수, 인재, 외교·통상 지원까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되는 전략산업이다. 이익은 노동자에게도, 주주에게도, 협력 생태계에도, 미래 투자에도 함께 배분돼야 한다.
성과배분 기준도 분명해야 한다. 기여에 비례하면서도 미래 경쟁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주주·협력사·국민경제에 전가되는 비용을 고려해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국내 최고 수준 처우를 받는 대기업 노조가 서민과 중소기업이 고통받는 시기에 파업을 무기로 과도한 요구를 밀어붙인다면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반도체 산업에선 단 하루의 생산 차질도 글로벌 고객 신뢰에 악영향을 준다. '한국 공급망은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고객들은 경쟁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노조는 파업 예고를 철회하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 성과급은 장기적 제도로 설계해야 한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재원으로 하되 R&D, 설비투자, 배당, 협력사 상생기금, 유보자금 등을 함께 반영하는 '균형형 성과공유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 역시 새로운 사회적 책임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초과 이익 일부를 미래 투자와 사회 환원으로 연결해야 한다. 오늘의 성과는 국민과 국가 시스템이 함께 만든 공동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힘겨루기가 아니다. "함께 키우고 공정하게 나누겠다"는 사회적 합의다. 삼성전자 노사는 국민경제의 책임 있는 주체답게 성숙한 타협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국가경쟁력을 지키고, 노동의 가치도 지속 가능하게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