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담뱃값 인상 결정에 따라 불법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개비(가치)담배'는 흡연 역사와 괘를 같이 한다.
1945년 광복을 기념해 조선군정청 전매국에서 내놓은 '승리' 10개비 한 갑은 당시 버스 6구간 값인 3원으로 일반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에 쌀 한가마니가 45원 가량이었다.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담배의 인기는 높았다. '승리'는 공급량이 부족해 배급제로 판매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담배가 나오는 때 소매점에 길게 줄을 서야만 담배를 구할 수 있었다. 이렇다보니 소매상들이 한 갑을 개비단위로 나눠 팔게 된 것.
이후에도 담뱃값은 4~5원대 다소 높은 가격에 보급됐다. 1946년에는 완전한 독립과 민족의 자존심을 고취한다는 의미에서 '백두산'과 '무궁화'가 등장했고, 1949년 대한민국 국군 창설 기념으로 '화랑'이 만들어졌다.
6·25전쟁 이후 인 195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필터 담배 '아리랑'이 25원에 판매됐다. 이 담배는 1976년 단종 될 당시 150원까지 값이 올랐다. 이후에는 1984년 재생산돼 500원에 팔렸는데,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이 500원 가량이었다.
아리랑이 출시된 후 1961년 나온 최고급 담배 '파고다'는 50원, 1965년 나온 신탄진은 60원이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68년 시내버스 요금은 10원, 자장면은 50원, 극장 요금은 130원이었다.
담배의 고급화로 1969년엔 '청자'가 100원에 발매됐다. 1974년에는 충무공의 애국심을 기리는 '거북선'이 300원에 출시됐다. 거북선은 1989년 500원까지 올랐다. 1980년대 30~60원이던 서울 시내버스 요금의 10배 가까운 액수다.
개피담배는 당시에도 문제였다. 특히 흡연이 제한된 중·고등학교 주변에 리어카상이나 버스정류소와 신문,복권 판매소에서 개피담배가 판매됐다. 1976년 당시 개비담배가격은 청자가 10원, 은하수와 한산도가 15원, 거북선이 20원 가량이었다.
1980년에는 솔(450원)이 등장하면서 다소 흡연자들의 부담이 줄었다. 솔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발매된 '88라이트'와 더불어 1980년대를 풍미했다. 한국담배인삼공사(1988년 4월) 출범 이후 처음 나온 담배는 1989년 700원에 판매된 '한라산'이다.
담뱃값은 1990년대부터 1000원을 넘어섰다. 디스는 1994년에 처음 등장해 1996년 900원에서 1000원으로 값이 올랐지만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개비담배는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학원가 등 학생들과 노인 흡연자를 대상으로 제한됐다.
최근 담뱃갑인상에 따라 개비담배가 확산될 조짐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청소년 흡연과 판매점들의 부당이익이 발생할 우려가 커진다.
개비담배 판매로 청소년들이 손쉽게 담배를 쉽게 살 수 있다. 판매점의 경우 한 갑에 4500원인 담배를 개비당 300원 가량에 판매 할 경우 1500원에 해당하는 부당이익을 챙길 수 있다.
게다가 현행 담배사업법에 따라 담배 포장지를 뜯고 개비담배를 파는 행위 자체가 불법 이다. 개비담배를 판매한 판매업자는 1년 이내 범위에서 영업정지 처분에 취해질 수 있다.
현행 담배사업법 제20조에는 '누구든지 담배의 포장 및 내용물을 바꾸어 판매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돼 있으며 지자체장이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