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국선변호사입니다]]① 약자의 마지막 희망…될 수 있을까

박보희 기자
2016.02.08 09:12

[the L리포트] 업무 배정 '풀제도' 변경…피고인 설문조사는 '검토중'

사진=영화 '소수의견'

#국선변호사 윤진원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아들을 잃고 경찰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 철거민 박재호의 변론을 맡게 된다. 하지만 재호는 결백을 주장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경찰과 검찰에 맞서 진실을 찾아 고군분투한다(영화 '소수의견')

#여대생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서재혁에게 국선변호사 송재익은 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면 형량을 깍을 수 있다며 설득한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는 재혁을 재익은 "결과는 책임 못진다"며 무시하지만 정작 재판에 들어가서는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변론조차 하지 못해 웃음거리가 된다(드라마 '리멤버')

'무고하게 범죄자로 몰린 피해자를 돕는 정의의 사도', '월급만 받고 의뢰인은 나 몰라라 하는 무능력자' 국선변호사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이다. 어떤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던지 간에 피고인으로 재판장에 서게 된 사회·경제적 약자를 마지막까지 변호하는 이가 국선변호사다. 돈 없는 사람이 재판장에서 마지막으로 갖을 수 있는 '내 편'인 국선변호사. 국선변호사는 약자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인기 급증 국선전담변호사…활동 범위도 넓어져

국선변호인는 변호사를 선임할 사회·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를 위해 국가가 무료로 변호사를 정해주는 제도다. '능력'의 범위에는 경제적 여유와 함께 나이·범죄의 종류 등 피고인이 처한 상황이 고려된다.

이중 국선전담변호사제도는 2004년 생겼다. 제도 시행 초기 '10초 변론'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변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약자에 대한 변론의 질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 2004년 11명의 국선전담변호사가 선발된 이후 현재는 230여명의 국선전담변호사가 전국에서 활동 중이다. 늘어난 변호사 수 만큼 담당 사건도 급증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 2005년 6만2169건이던 국선 담당 사건은 지난 2014년 12만 4834건이 달했다. 2006년 형사사건의 22.6%던 국선변호인 신청 사건은 지난 2013년 35.9%까지 치솟았다. 이중 국선전담변호인이 맡는 사건은 40% 수준이다.

국선전담변호사는 희망하는 변호사들도 급증하는 추세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기면서 매년 1500명이 넘는 변호사가 배출되며, 변호사들의 취업이 어려워지자 안정적인 수임을 받을 수 있는 국선전담변호사가 인기로 떠올랐다. 지난해 국선전담변호사 선발 경쟁률은 9.2대1에 이른다.

높은 경쟁률은 국선전담변호사의 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2014년 국선전담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은 피고인·피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6%는 국선전담변호사의 변호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는 승소율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010년 처음으로 국선변호사의 승소율(11.2%)이 사선변호사의 승소율(8.5%)을 넘겼다. 지난 2012년에는 국선변호사의 승소율은 15%, 사선변호사는 13.1%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국선전담변호사가 일명 '장발장법'으로 불리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조항의 위헌을 이끌어 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는 상습 절도범을 가중 처벌하도록 하는 법이다. 당시 피고인은 노점에서 600원짜리 뻥튀기 과자 3봉지를 훔치다 걸렸는데, 전과가 많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됐다. 사건 담당 국선전담변호사는 이같은 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올해부터 '풀제' 시행…피고인 설문조사는 '검토중'

커진 규모만큼 국선전담변호사 제도 개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변호사 평가'다. 현재 국선전담변호사는 선발부터 평가까지 법원에서 맡고 있다. 2년 임기의 국선전담변호사는 3번까지 재위촉 될 수 있는데, 판사의 평가를 근거로 재위촉 여부가 정해진다.

변호사 단체들은 선발과 평가를 법원이 한다는 데 의문을 제기해 왔다. 평가를 판사가 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독립적인 변론을 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지적에 대법원은 지난해 국선변호정책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심의위원회는 오는 3월부터 사건 배정 방식을 변경하기로 했다. 기존 1인당 평균 2개 재판부에서 사건을 배정받는 방식에서 3~4개 재판부에서 배정받는 '풀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렇게 바뀌면 변호사를 평가하던 재판부가 2개에서 4개로 늘어난다. 평가자가 늘어나니 더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국선변호정책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부 선택의 폭을 넓혀 '풀'을 구성해 운영하는 방안"이라며 "한 재판부에 고정되서 사건을 배정받으면 아무래도 변호사에게 부담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국선전담변호인의 변론을 받은 피고인을 대상으로 변호인을 평가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방법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객관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변호인이 피고인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법원은 이같은 의견을 고려해 올해 상반기부터 일부 법원에서 시범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를 해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과도한 사건 배정도 고충…문제는 예산

국선전담변호사들이 맡는 사건 수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들은 매달 합의 사건의 경우 20~30건, 단독사건은 25~35건을 배정받는다. 서울에서 국선전담변호인으로 활동중인 한 변호사는 "물론 사건에 따라 다르다"면서도 "사건이 매달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달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한 달에 50건까지 늘어났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매년 국선 신청 건수는 늘어나는데 예산을 한없이 늘릴 수도 없다. 지난해에는 예산이 부족해 국선변호료가 연체되기도 했다. 지난해 예산이 부족했던 이유는 예산의 일부가 '공탁지원금'으로 배정됐기 때문이다. 법원에 공탁된 돈은 은행이 맡아 보관하는데, 이자 등 수익의 일부가 국선변호를 위한 예산으로 쓰였다. 하지만 은행 금리가 떨어지는 등 지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관련 예산이 대폭 줄었다.

예산이 부족하면 국선전담변호사에게 배정되는 사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담변호사의 보수는 고정이 돼있어 추가 비용이 없지만, 일반국선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면 수임료를 따로 책정해 지급해야 한다.

올해부터는 국선변호료 예산 전액이 일반예산으로 책정된다. 지난해 469억원이던 예산은 올해 551억으로 증가해 연체사태는 해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법원행정처 측은 "예산이 늘기는 했지만 국선 사건이 꾸준히 늘고 있어 조심스럽게 운영을 해야 한다"며 "추이를 보고 업무량 조절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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