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강하게 반대하지만 판결을 수용합니다. 우리 민주주의와 국민 단결을 위해 모든 결과에 대한 승복을 선언합니다.”
미국 역사에서 ‘위대한 패배자’로 일컬어지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이 2000년 12월 13일 연설한 내용 중 일부다. 당시 진행된 미 대선에서 고어는 전국 투표 결과로 조지 W 부시에 54만표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간발의 차이로 뒤졌다. 그런데 부시에게 패한 플로리다주에서 문제가 생겼다. 재검표 결과 고어의 득표 중 다수가 무효로 처리된 것이 드러났다. 소송전이 이어졌고, 연방대법원은 재검표 중단 명령을 내렸다.
고어는 이 결정에 불복할 수 있었지만,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당시 미국은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여론이 양분되는 등 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했다. 이에 고어는 개인보다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결단을 내렸다. 불복 절차를 통해 혼란을 계속 이어가는 것보다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7년 전 고어의 일화는 201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정농단에 헌정질서 붕괴, 대통령 탄핵까지. 사상 초유의 상황에 국민들은 사분오열하고 있다. 선고만을 앞둔 지금까지 촛불과 태극기로 대변되는 대규모 집회가 연일 이어진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살해하겠다는 협박범이 입건되는 등 과격한 모습까지 보인다.
헌재는 법치국가인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헌법기관이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2개월 넘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해 온 헌재는 누차 ‘공정성’을 강조해 왔다. 이 권한대행은 최종 변론기일에서 “예단이나 편견 없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적 제약, 분열된 여론 등 최악의 조건에서 중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재판관들의 막대한 책임감을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제 선고만이 남았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우리 모두가 승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탄핵 사건 관계자들이나 정치인들 역시 불복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이는 혼란과 갈등을 더 야기 시킬 뿐이다.
고어는 말했다.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에 무수한 논쟁이 오가지만 일단 결과가 정해지면 승자나 패자나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화합의 정신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하십시다. 나의 친구 여러분들이여! 이제는 제가 물러가야 할 시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