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커피숍에 경찰관 2명이 출동했다. 여자는 매장 구석에서 울고 있었고 남자는 그 옆에 서 있었다. 폭행사건이다. 남자의 위협에 비명을 지른 여자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이어 친구에게도 빨리 와달라고 전화했다. 커피와 쟁반이 나뒹굴었다. 매장 직원들도, 주변 손님들도 화가 난 남자를 말리지 못했다.
10여 분이 훌쩍 지나 인근 지구대 경찰이 도착했다. 때마침 여자가 부른 친구도 커피숍으로 왔다. 경찰과 친구의 도착 시간에 별반 차이가 없었다. 현재 경찰 112신고는 지방청(접수)→경찰서(지령)→지구대·파출소(출동) 등 3단계로 진행된다. 긴급신고에서 3단계 대응시간은 빠르면 5분, 늦으면 8~9분대다.
최근 경찰청은 올해 안에 112 긴급신고 대응시간을 최대 40여 초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작 현장 경찰들은 “탁상공론”이라고 심드렁하다. 수도권 지구대 한 경찰은 “빨리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거냐”며 “인력이 없으니 신고가 밀리고 자연히 출동시간도 지연된다. 근본부터 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지구대 경찰은 “현장에서 뛰어보고 구상한 방안이 맞느냐”며 “인력·장비·거리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데이터 없이 나온 목표다. 결국 성과를 매기는 도구로 전락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신고 접수를 신고자와 가까운 지구대·파출소가 바로 받아야 한다”, “순찰차 태블릿PC·내부망 지도·GPS 등 인프라 개선을 위한 투자가 먼저다”와 같은 요구도 나왔다.
경찰청이 내놓은 방안은 △접수역량교육 △실시간 모니터링 △순찰차 거점근무 등 이다. ‘접수역량교육’은 일종의 손가락 기술이다. 지방청 담당자가 신고전화를 받으면서 바로 내용을 전산에 입력하도록 자판 단축키를 익히고 타자 속도를 높이는데 주안점을 뒀다.
‘실시간 모니터링’은 경찰서 담당자가 각 지구대·파출소 순찰차 위치를 계속 관찰하겠다는 뜻이다. ‘순찰차 거점근무’의 골자는 지름길을 파악하고 신고 다발지역에 대기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지만 애초부터 당연히 했어야 할 일들이다. ‘뻔한 얘기 아니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경찰청의 대답은 이랬다. “그래도 목표를 갖는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