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혐오도 투표하고 나서

장윤정 기자
2017.05.09 06:00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파국을 맞이했다. 그가 승리했던 18대 대선에서 기권표는 약 1000만표다. 그가 받은 표는 약 1577만표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기권표 천만 중 10분의 1만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반대투표로 행사했다면 18대 대통령은 다른 후보가 됐을 것이다.

어떤 후보를 뽑든 투표율이 높아야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그만큼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걸 투표율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당선된 대통령에게 비지지(非支持) 의사를 보일 수 있는 방법이 투표권 행사다.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됐긴 하지만, 전체 유권자로 볼 때 지지층보다 비지지층이 더 많은 대통령이 나올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이번 대선은 다자구도기 때문에 비지지층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일수록 한 표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의무가 아니다. 기권도 또 하나의 선택이라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권은 권리의 포기다.

뽑을 사람이 없는데도 투표해야 하느냐고 되묻는 이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후보자들의 공약과 면면을 살펴볼 때 100% 지지할만한 후보 찾기는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백마 탄 완벽한 왕자(혹은 황금 마차 탄 공주)를 찾는 게임'이 아니다.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후보들 중 한 명은 반드시 당선된다. 그렇다면 그나마 나아 보이는 후보를 뽑는 것이 '최선'이다. 혹은 누구를 떨어뜨리기 위한 전략적 반대투표 역시 중요한 한표다.

"정치를 혐오하고 관심 갖지 않는 국민들은 혐오스러운 정치인만 갖게 된다"는 영국의 격언이 있다. 교과서적이고 지루하게 들릴 얘기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차악(次惡)에의 투표라도 필요한 것이 선거다. 악(惡)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도 민주시민의 의무다.

정치와 정치인을 혐오할 자격도 투표한 국민들에게 먼저 주어지는 권리다. 높은 사전 투표율에 이어 높은 당일 투표율을 기록한다면 누가 당선되든 국민을 두려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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