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병재와 사과문 제조기, 그리고 #미투

강기준 기자
2018.02.27 10:52

"공인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경솔하게 행동한 점, 반성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사과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투적인 문장이다. 이 문장의 속뜻은 '공인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 그러는 니들은...', '경솔하게 행동한 점 = 치밀하지 못했던 점', '더 나은 모습 = 좀 더 해먹겠다'라고 한다.

2012년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유병재씨가 "반평생을 넘는 TV시청과 다년간의 연구로 공적 영역에서의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며 올린 이 풍자 글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사회에 물의를 빚은 연예인이나 공인의 진정성 없는 사과에 화난 여론이 반응한 것이다.

그로 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다시 유병재가 나타났다. '사과 제조기(Apology Generator)'라는 사이트다. 지난해 말부터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Too·나도당했다) 운동이 불붙고, 이에 따른 사과문이 넘쳐나면서 등장한 것이다.

방식은 비슷하다. 예를 들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 '미안'하다고 하면 내가 잘못한 걸 인정하게 되니까",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 당장 내 트위터 계정을 지우겠다"는 식으로 유명인들이 했던 사과문을 옮겨와 이를 재해석해 풍자하고 조롱한다. 다른 점이라면, 이런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며 그럴듯한 사과문도 만들어 준다는 것.

미투 운동은 피해자가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수년 전 권력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묻혔던 일들을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다. 이 운동이 점점 더 확산되면서 누구는 '자수하겠다'고 선수(?)를 치기도 했다. 여론은 그에게 '자수는 경찰에게, 사과는 피해자에게'라며 타박했다.

미투 운동은 증명하기 어렵거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한 사건들이 많다. 그래서 가해자 스스로 그때 그 일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상처가 됐고, 잘못된 일이었는지 명확히 깨닫는 게 우선 필요하다.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이유다. 현재나 6년 전이나,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얄팍한 거짓 사과문 정도는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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