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 "은행 앱, 남 얘기"… 오프라인에 갇힌 이들

이재은 기자
2018.12.23 06:01

[디지털 오지-②] 은행, 앱 통한 비대면화 주력하면서 노인 소외 현상 심화… "노인 배려 서비스 제공해야"

[편집자주] &#65279;<font color="#ff0000">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65279;&#65279;&#65279;&#65279;&#65279;&#65279;</font>&#65279;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어르신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60대 A씨는 얼마 전 은행에 가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험을 했다. 점심 시간이긴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번호표를 더 일찍 받은 건 A씨인데, A씨 보다 늦게 도착한 젊은이들이 먼저 은행 업무를 봤다. A씨는 은행 측에 항의를 했으나, "어플리케이션(앱)에서 대기표를 받으면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사회가 디지털화하면서 젊은이들이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은행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와 동시에 노인 세대는 점점 금융 서비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모바일뱅킹은 노년층에겐 아득한 이야기일 뿐이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711만 5000명으로 전체 인구 중 고령 인구 비율이 14.2%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6년에는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고령 사회 한국에서 노인의 일상은 갈수록 어려워만 지고 있다. 점차 사회가 디지털화하고 있지만 노인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노인들의 소외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영업점 방문 빈도가 줄고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한 뱅킹이 일반화됐지만 노년층에게 이 같은 일처리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연령별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대의 인터넷 뱅킹 이용률은 10명 중 2명(19.9%) 수준이었다. 70대 이상은 6.4%에 그쳤다. 30대(91.4%)와 40대(79.7%)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의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75세 이상 고령자의 97.8%가 "온라인뱅킹을 할 줄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융거래 방식은 '영업점 방문'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였으며, 이들은 "인터넷뱅킹을 이용할 때 긴장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디지털화에 사활을 건 은행은 앱에서 예적금, 대출, 송금, 환전 등 금융 편의성을 높이려 노력 중이다. 패턴, 지문 등 공인인증서 이외의 간편한 본인인증 방식에 은행 방문 없이 통장 개설이나 대출도 가능해졌다. 이제 다른 계좌로 송금하기 위해 은행 영업점이나 ATM을 찾는 경우가 예전만큼 많지 않다.

노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은행 지점이나 ATM은 꾸준히 감소세다. 2012년 말 7698곳이던 국내 은행 지점·출장소는 지난 6월 6779곳으로 줄었다. 올해 1분기 금융거래에서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비율(9.5%)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은행들은 점포를 통폐합하거나 아예 무인점포를 만들고 있다. ATM도 그 수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 올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3·4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 9월 말 기준 ATM는 2만6827대로 2년 전보다 3302대 감소했다.

뿐만 아니다. 은행 앱이 처리하는 기능이 다변화되면서 이제 노인들은 비대면 서비스 뿐만 아니라 대면 서비스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났다. 대표적인 게 국민은행의 은행 지점 대기표 발권이다.

국민은행 간편 입출금 앱 '리브'는 고객에게 앱을 통한 은행 번호표 발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는 앱을 실행해 가까운 지점 혹은 즐겨찾는 지점 등을 지정해 대기고객 수를 확인하고 온라인 번호표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직장 등의 업무로 시간을 낼 겨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환대받는 서비스지만, 노인들은 대면 서비스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난 셈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노인들이 금융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되자, 정부는 뒤늦게 손을 걷어붙였다. 지난 8월22일 개정된 내용이 시행된 행정안전부 국가정보화 기본법 32조1항에는 웹접근성 의무화가 명시됐다. '국가기관 등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고령자 등이 쉽게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개정법은 웹사이트 이외에도 이동통신단말장치에 설치되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게 특징이다.

시중 은행들도 대안 마련에 나섰다. 16개 국내은행이 약 5000여개 지점에서 '어르신 전용상담(거래)창구'를 운영 중이다. 이중 농협, 한국씨티, 대구, 광주, 전북은행 등 5개 은행은 총 226개 전담(특성화)지점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고령자 전용 서비스 우수은행으로 선정된 KEB하나은행은 전국 800여개 점포에서 '행복동행금융창구'를 운영 중이다. 소비자보호본부 내 전담 부서를 설치해 고령고객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영업점에는 전담 인력을 배치해 어르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노인 친화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며, 은행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은행권은 노년층을 위해 이동점포를 활성화 하고, 선별적으로 점포를 축소하며,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교육하고, 노인 전문 창구 운영을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사회적 배려 측면에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성장이 정체된 금융권의 돌파구이기도 하다"면서 "최근 금융사간 경쟁이 치열하고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데 은퇴 후 자금을 가지고 있는 60대, 70대들을 공략하는 것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이미 은행들이 노년층을 대상으로 인터넷·모바일 뱅킹 교육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POSB은행은 POSB 액티브 네이버스(Active Neighbors) 프로그램을 운영해 '중장년층 고용'과 '노인들의 은행 앱 사용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했다. POSB은행은 각 은행 지점에 중장년층을 '디지털 대사'로 임명, 노인들에게 모바일 뱅킹 사용법을 교육하고, 이 '디지털 대사'들이 다른 노인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POSB 관계자는 "이러한 전략을 통해 노년층과 중년층 70명을 고용했다"면서 "노인들이 눈높이에 맞게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배움으로써 거부감이 줄고, 자신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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