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기부하려던 120억원의 성금이 구호단체들로부터 거절당하고 있다.
신천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20억원을 이체했지만 모금회는 반환의사를 밝혔고 전국재해구호협회도 신천지 측 기부제안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모금회와 구호협회 등 구호단체들이 120억원을 거부한 게 '구상권'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일부 매체에선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되면 정부가 신천지에 구상권 청구를 할 수 있고, 120억원의 기부금이 그 대상이 돼 결국 반환될 수 있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아울러 신천지가 지금 상황에서 기부행위를 하는 게 '사해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법리적으론 성립되기 어렵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상'에 불과하다는 게 법전문가들의 견해다.
박의준 변호사(머니백)는 "구상권 운운하는 것은 신천지의 위법행위를 전제로 해야만 얘기될 수 있는 것"이라며 "너무 앞서 나간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구상권이 성립되기 어려운 이유를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우선 신천지가 조직적인 불법행위로 고의로 바이러스를 퍼뜨렸거나 방역활동을 일부러 방해했다는 점이 밝혀져야 정부가 신천지에 대해 구상권을 주장할 수 있다. 즉 신천지의 책임이 '도의적'인 게 아니라 '불법'의 영역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신천지가 조직적으로 악의적 목적을 위해 코로나19의 확산을 위한 활동을 했다는 정황이나 증거는 없다. 정부 당국도 방역을 위한 신천지의 협조를 구하면서도 '불법행위'를 거론하거나 지적한 바는 없다.
둘째, 만약 수사 등의 방법으로 신천지의 불법행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120억원이 국가의 구상권 대상이 되리란 건 불확실하다. 신천지 재산이 120억원이 전부가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언론 등에서 거론되는 바와 같이 5000억원을 훌쩍 넘는 수준이라면 이미 기부된 120억까지 구상권 청구 대상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나머지 재산으로도 충분히 구상권이 해결된다면 기부금 120억원에 대해선 논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재판 등을 통해 정부의 구상권이 인정되더라도 정부가 모금회 등 구호단체를 대상으로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20억원을 구호단체에서 실제로 기부받는다면 '증여'에 해당돼 법적 주인은 구호단체가 된다. 따라서 정부가 이미 구호단체에 기부(증여)된 120억원에 대해서까지 방역에 쓰인 비용에 대한 구상을 청구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오형철 변호사(법무법인 세한)는 "구호단체를 상대로 정부가 반환청구를 하는 것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매체에선 신천지가 구호단체에 120억원 기부하는 것을 '사해행위'로 볼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법리적으로 틀린 주장에 가깝다.
만약 신천지의 기부를 '사해행위'로 본다면, 정부는 사해행위취소소송을 통해 기부금을 반환받아야 하는데 여기엔 요건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사해행위취소소송이 불가능한 이유도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우선 기부금이 전달된 시점에서 정부가 신천지에 대해 '채권'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신천지에 대해 '구상권'이라는 채권을 가진다고 봐야 '사해행위'도 성립하는데 현재 시점에선 정부가 '구상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아울러 신천지도 현재로선 정부에 대해 '채무'가 있다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둘째, 신천지가 기부금을 넘긴 시점에 무자력(無資力)이어야 한다. 다시말해 기부금 외에 다른 재산이 없어야 신천지의 기부행위를 채권자(정부)에게 돈을 주기 싫어 제3자에게 넘긴 '사해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신천지 보유 재산은 120억원보다 훨씬 큰 수천억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천지와 구호단체 둘 다 '사해행위의 의사'가 있어야 '사해행위'가 성립된다. 하지만 현재 수천억원의 별도 재산이 있다고 알려진 신천지가 사해의사로 기부를 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제3자인 구호단체가 사해의사가 있다고 보긴 더 어렵다.
오 변호사는 "여러 전제가 다 인정돼야 사해행위가 되는데 일단 신천지에 대해 정부가 채권을 갖게된다고 인정되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에서의 세모그룹의 배상책임을 근거로 신천지에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 상황인 코로나19와 인재(人災)였음이 분명했던 세월호 참사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익명을 원한 한 변호사는 "법원 하급심에서 세월호 참사로 정부가 지출한 비용을 유병언 전 회장의 상속자들이 갚아야 한다는 배상판결이 난 것은 세월호 운항에 청해진해운이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론이 나왔던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가 신천지 신도들이나 신천지 예배로 확산됐다는 정도로 신천지에 직접 책임을 추궁한다는 건 법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전염병 확산 와중에 감염피해를 입은 신도들을 가해자로 보는 건 너무 나간 얘기"라며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론 감염병 피해자로 보는 게 법적으론 맞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호단체들이 120억원이나 되는 큰 돈을 거부하는 건 법적으로 성립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정부의 구상권이 두려워서가 아닐 것"이라며 "신천지 돈을 받았다고 비난을 받고 구호사업이나 모금활동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6일 정례브리핑에서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은 신천지에 대한 정부의 구상권 행사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신천지 측에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정부는 구상권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 총괄조정관 역시 구상권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결국 현재까지 밝혀진 상황만으론 신천지의 기부금이 정부의 구상권 대상이 된다거나, 신천지의 기부행위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는 류의 주장은 법적으론 틀린 얘기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