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12일.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사형이 확정됐다. 정남규는 힘없는 아이, 힘이 약한 여성과 중년 남성 등 총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흉기 또는 방화로 중상을 입쳤다. 정남규는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한 취재진의 말에 마스크를 내리고 미소를 보였다.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 정남규는 독방 수감 후 살인을 저지르지 못해 괴로워했다. 그는 2009년 11월21일 독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인에 미쳐 결국 자기 자신까지 죽여버렸다.
1969년생 정남규는 1989년 특수강도 혐의, 1996년 강도 및 강간미수 혐의 등으로 수감 생활하는 등 범죄자가 됐다. 이후에도 1999년 절도 및 강간, 2002년 자동차 절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그가 살인자가 된 건 2004년부터다. 그는 그해 1월14일 저녁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의 한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13세 A군과 12세 B군을 칼로 위협해 인근 산으로 데려간 뒤 성추행하고 스카프 등 도구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범행 16일 만에 시신이 발견됐고 정남규는 그날도 서울 구로구에서 4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그는 같은 해 2월에만 두 명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10대, 20대, 3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히는 등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다.
2004년 1월부터 약 27개월 동안 정남규는 거의 매달 서울과 경기 지역을 돌며 총 24건의 범죄를 저질렀다. 원한 관계나 금품 갈취 등이 목적이 아닌 살인 그 자체를 즐겼다. 그는 자신에 의해 피해자가 끔찍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고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정남규는 2006년 4월22일 검거됐다. 당시 금품을 훔치기 위해 다세대주택에 침입한 정남규는 자고 있던 20대 남성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다. 하지만 피해자는 부상만 입은 채 잠에서 깼고 정남규와 몸싸움 뒤 경찰이 올 때까지 제압했다.
경찰에 검거된 정남규는 전혀 반성하는 기미 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금도 피 냄새를 맡고 싶다. 사람 피에서는 향기가 난다", "더 이상 살인을 못 할까 조바심이 난다" 등 살인 행위에 집착하는 발언을 했다.
정남규의 수사에 투입된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는 "많이 힘들었죠?"라는 말로 정남규의 입을 열었다. 수사 12시간 후 정남규는 우리나라 사형제도에 관해 물은 뒤 살인사건 4건을 실토했다.
권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정남규는 사람을 살해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살해 과정에서 자기 즐거움을 찾았다"며 "정남규와 면담할 때 '인간이 어떻게 이런 서늘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범행한 장면을 설명할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충족감을 느끼더라"라고 말했다.
정남규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폭행당했다. 그는 경찰 수사 중 해당 사건이 자신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학교폭력과 집단 괴롭힘을 당했고, 군대에서도 심한 구타와 가혹 행위 등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반사회적 성향을 갖게 된 정남규는 살인을 시작한 뒤로는 완전 범죄를 위해 술과 담배를 끊고 달리기 운동했다. 그는 더 많은 살인을 하기 위해 더 오래 건강하게 살려고 운동했다.
특히 그는 살인을 쾌락을 위해 했다고 밝혔다. 정남규는 수사 중 경찰이 "본인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 죽이고 나면 나쁜 감정이 없어지냐"고 묻자 정남규는 "없어진다. 성취감 같은 게 다가온다. 몸으로 쫙"이라고 답했다.
정남규는 또다른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하기도 했다.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발생했던 20대 여성 살인 사건 범인을 유영철이 자신이 한 일이라고 자백하며 현장검증에 나선 모습을 뉴스로 본 정남규는 "내가 죽인 것"이라며 자백하고 현장검증을 다시하기도 했다.
당시 수사 팀장은 2021년 한 시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남규가 자신이 유영철보다 범행 수법에서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며 "정남규가 실제로 유영철보다 더 많이 더 완벽하게 죽이고 싶었고, 살인에 있어서는 '1인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남규는 약 1년의 재판 끝에 최종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곧 빨리 사형해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그는 "살인을 못 해서 답답하고 우울하다"고 말했다.
사형수가 된 정남규는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생활했다. 그는 수감 중에도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남규는 사형 확정 2년 7개월 후 구치소 독방에서 숨을 거뒀다.
교도관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정남규를 발견해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다음 날 새벽 사망했다. 유가족의 외면 속 정남규의 시신은 화장됐다.